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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Nov 23. 2024

우리가 나눈 가을 이야기

수필통

매일 아침 병실 창가에 앉아있는 너를 보러 가는 길, 오늘따라 단풍이 붉어 보이네. 마치 우리의 세포들이 마지막 불꽃놀이로 타오르는 거처럼.  


너와의 시간이 벌써 삼십 년이 넘었지. 우리 집 앞 암센터로 네가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벌써 석 달째인데도 나는 익숙하지가 않다.  이 복도만 서면 난 숨이 턱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한참을 서성이다 잡은 문고리. 내손이 살얼음처럼 떨리길래 애써 꼭 잡았어. 우리가 나누는 시간도 이렇게 조금씩 떨리고 흔들리고 있겠지!

이런 내 모습을 너에게 보여주기 싫은데, 내 눈이 벌써 울고 있네.

"바보야... 또 울었구나?"


네 말에 소리 못 냈던 눈물이 엉엉 소리를 며 가슴을 때렸어. 미안해 친구야. 죽음을 앞둔 너보다 더 서럽게 우는 나를,


너는 여전히 따뜻한 손길로 나를 만져 주는데. 니 작은 온기마저 뺏어 올까, 나는 너무 두려웠어.

십 대에 처음 만나 마흔 넘어 이별을 준비하는 우리. 시간이란 참 이상해. 흐르는 듯 멈춰있고, 멈춘 듯 흘러가니까. 네 곁에 앉아 남의 이야기처럼 말하는 너의 투병생활. 내 가슴에 창칼처럼 또렷이 박혀 피가 나는 거 같아. 그런데도 넌 웃으며 "난 행복했어"라고 말하는 걸 보면...


난 무얼 했지. 난 왜 힘들다고, 죽고 싶다고 징징거렸을까! 나의 우울증과 통증이 한없이 가볍고 부끄러워졌어.

우리는 어쩌면 한 덩어리의 별빛이었을까? 지금은 각자의 궤도를 그리며 흩어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하나의 빛으로 만날지도 모르잖아. 창밖으로 떨어지는 단풍잎처럼, 우리에게 남은 시간도 하나둘 떨어지고 있겠지. 마지막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시리고 아픈 가을. 나는 조용히 널 품에 안기만 해.

이번 가을이 너의 마지막 가을이라는 걸...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어 밀어내는 내 마음이, 저무는 햇살 아래 그림자처럼 길게만 늘어져.


나는 가을마다 너와 줍던 플라타너스 나뭇잎을 계속 주을 거야. 네 거와 내 거. 그러면 네가 먼저 골라. 누구 것이 더 큰지 내기하고 다시 달리자.  난 너와의 시간을 추억으로 만들지 않고, 늘 지금으로 살게. 너와 내가 같이 지구의 궤도에서 만나는 날까지.

                                      사랑해, 나의 벗 수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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