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이 마음으로 눌러쓴 편지가 비를 맞고 도착해 참 많이도 아렸습니다. 지금 그렇게 계시면 안 되는데..
제가 어떻게 해드릴 수도 없고.제 마음만 안절부절못합니다.
견디기 힘드시겠지만 다른 정신에 기대시면 안 됩니다. 몸이 많이 상하세요. 정신도 몸이 건강해야 회복될 수 있잖아요.
작가님의 황망한 마음을 제가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 고통이 글자에도 묻어져 나와 바로 답장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 언제든 당사자가 될 수도 있는 입장이잖아요. 저도 서식지를 요단강 앞으로 옮긴 지 오래되었습니다.
전 우울증 진단받은 지 벌써 4년인데요. 좋아지는 거 같으면 다시 나빠지고 다시 좋아지는 반복을 계속하더라고요.
이게 굉장히 희망고문이고 삶의 끊을 놓게 하는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희망이 안 생기거든요. 좋아졌다고 계획을 짜고 꿈을 꾸면 다시 무너지기를 반복하니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미로에 갇힌 기분이랄까요.
작가님 저도 지금 엄청 아픈데요. 전 몸이 더 아프고 몸이 아파 살고 싶지 않아서 마음이 아픈 케이스예요. 그런데도 전 내년 계획이 있고, 지금 주문해 놓은 책도 있고, 어느 모임을 주체하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요. 저도 유쾌하고 활발하고 장난꾸러기예요. 하지만 저도 제가 내일 죽을지, 오늘 죽을지 모릅니다. 이해하기 힘드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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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보통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고민하시지요?
우울증 환자는 다른듯합니다.
우울증 환자에겐 죽음과 불확실한 미래만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요. 우울증의 경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밝은 사람으로 보일 거라 생각됩니다. 아프다고표현을 많이 할 때는 차라리 나은 상태 같거든요. 제가 겪어보니 그렀더라고요.
진짜 사고가 나기 전에는 전혀 힘든 티도 안 나고 그냥 평상시처럼 똑같습니다. 왜냐면요. 우울증 환자들은 늘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거든요.
부모님이 무섭고 내 말을 안 들어주셔서가 아니고요.
"내가 아파서 우리 가족이나 내 주변인들이 얼마나 힘들까?"
죄책감과 매일 싸우며 살아갑니다. 그 죄책감과 미안함 때문에 더 아픈데도 아무렇지 않게 같이 먹고 마시며 일상을 살아가는 건 가족을 안심시켜주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그랬어요. 지금도 그러고 있고요.
또 환자 입장에서 보면 부모의 입장과는다르지요. 환자는 친구를 만날 때, 학교생활을 할 때, 지인을 만날 때 나오는 상대적 성격이 변화잖아요. 사실 우울증 환자는 주변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거 어떻게 안 되는 거야?"
"언제 좋아지는 거야?"
"왜 그러지?"
"니 몸이나 신경 써"
그냥 듣고 웃어넘기고, 들을 때마다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지만요. 엄청 스트레스예요. 내 몸이 내 맘 데로 안되는데어떡하나요.
질문은 마치 내가 어떻게 하면 될 거 같은 질문들이잖아요. 이런 거 하나하나를 쌓아두진 않지만 지쳐가고 버티는 힘이 줄어드는 역할을 하는 건 맞습니다.
내가 아파서 가족도 힘든 걸 알지만 내 마음대로 몸이 좋아지질 않으니 절망할 수밖에 없고요.
내가 없어지면 가족이 얼마나 힘들어할까 이 마음으로 버티며 괜찮은 척 연극을 하는 거예요.
사실 저도 삶에 한 조각의 미련도 없거든요. 모두의 기억만 지우고 갈 수 있다면 저도 내일이라도 그만하고 싶어요. 가족과 날 사랑해 주는 분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버티는 거지요.
있다 없다의 논리로 보시면 어렵습니다.
이건 슬픈 사고입니다.
가족이 다 같이 삶이라는 흔들 다리를 건너다가 판자하나가 삭아서 한 명만 사고로 떨어진 것이에요.
예측할 수 없고 준비할 수없었으니 사고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게당연합니다. 시간을 넉넉히 가지세요. 상실은 인력으로 버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삶이 그렇더라고요. 준비하고 있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늘 예상밖으로 진행되더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변수와 부딪혀야 하는 게인간의 삶이지 싶습니다.
사람은 아는 거 같아요. 늘 본연의 자신으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때론 광대로라도 버텨야 하는 날도 있는 거지요. 힘드시겠지만 자책하시기보단 연극이라도 하며 엄마를 안심시켜 드리고자 했던, 고양이라도 키우면 불확실한 내일에 그림을 그리려 애썼던 자녀분의 마지막 갸륵한 호흡에 귀 기울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