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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년 기록

고맙다 아가~

오늘을 씁니다

by 이음

겨울에도 해가 뜬다.

언제 끝날지 모를 괴로움이었다. 나도 아이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더 많이 힘들었다. 그러던 중 아이가 말했다.


"엄마 월요일에 놀이공원 도 돼?"


"응?"


"친구넷이 같이 가려고"


"그래? 너 길치인데 누구 길 아는 친구 있어?"

"니 친구들 다 길치잖아?"


"응. 저번에 다른 반인데 우리 집 놀러 왔던 친구, 초등학교 때부터 베프라고 했잖아. 개가 지하철도 탈 줄 알고 길 잘 알아"


"그래? 다녀와. 넌 시내서 집도 못 찾아오니깐 잘 따라다녀야 해"


"알겠어~"


아이가 오랜만에 놀러 간다니 나도 좋았다. 그런데 아이얼굴에서 살짝 행복한 모습이 보였다.


"너네 같이 노는 친구들 중에 여자친구들도 같이 가지 그래? 여자친구들이 같이 놀러 가자고 많이 그랬잖아?"


"안 그래도 온데"


"그래? 근데 어떻게 넷이야?"


"아.. 내 친구들이 다 다른 반 친구들이고"


"응?"


"여자애들이 다 우리 반. 단톡에서 놀러 가자고 해서 나는 놀이공원 가기로 해서 안된다니깐. 개들도 따라온데"


"여자애들은 몇 명인데?"


"응. 개들도 넷"


"대박! 잘됐다. 거기 너 따라다니는 친구도 와?"


"응"


"크크.. 그럼 너랑 썸 타는 친구도 와?"


"응"


"흐흐. 좋겠네? 어쩌냐 삼각관계?"


"아 몰라. 그건 개 혼자 그러는 거고. 암튼 난 내가 좋아하는 애 온 데서 꼭 가려고"


"그래. 그럼 엄마가 옷 사줄까? 옷이 다 끼던데?"


"응"


"케쥬얼로 청바지 코디 할래? 편하게 트레이닝 입고 갈래?"


"트레이닝 사줘. 흰색으로"


"그래. 넌 흰색 좋아하더라. 흰색만 입고 외출하는 거 같아"


"응. 흰색이 잘 어울려"


갑자기 어둠에 갇혀 있던 우리 집에 불이 켜졌다. 아이의 얼굴에도 설렘이 분홍분홍 묻어 있었다. 상처가 났어도 또 살기를 택하는 아이를 보며 분노로 가득 찼던 내 마음에도 창문이 스르르 열렸다.


분노가 빠져나가자 무기력과 지침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아들이 다시 흥얼흥얼 머리띠를 하고 팩을 하고 돌아다닌다. 그 모습에 꽉 막혔던 내 폐가 다시 호흡하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니가 웃으면 엄마는 다 되는구나..


참고 사는 게 참 힘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는 진짜 참아지지가 않았다. 무슨 사단이라도 내고 싶은 악함이 들어 나도 내가 무서웠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숨을 쉴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아이가 다시 알려줬다.


참는 게 아니고 묵묵히 지나가는 모습을 말이다. 아이는 나처럼 괜찮은 척 밝게 보이려 애쓰지 않았다. 잠이 안 오면 안 오는 데로 밤을 새우고, 화가 나면 자신의 잘못이 아닌 걸 인정하며 인식했다. 아이는 충분히 아파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또다시 일상 속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줬다.


어떻게 박힌 못자국이 사라지겠는가. 사라지지야 않겠지만 그 못자국을 두고 다시 위로 나이테를 만드는 모습이 엄마는 고맙고 또 고맙다.


아이는 또다시 방에서 카톡단체통화를 한다.


"봤어? 헌재 가서도 계엄령이 자기 권한이라고 끝까지 우기는 거?"


하..

그래 우리 아들이 돌아왔다.

어쩌면 아이는 엄마 생각보다 더 자란 아이일 수 있겠다. 어쩌면 아이는 엄마보다 더 강한 존재 일수 있겠다.


나만 몰랐던 거다.

언제나 날 살게 하는 힘은 너였다는 걸.


아들아 또 살자.

그럼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