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씁니다
나는 무기력증이 아니었다. 내가 빨빨거리기 시작한 건 금요일부터였다. 움직이고 싶었던 욕구가 가만히 있어야 뼈가 붙는다는 것을 이기고 말았다.
컥컥 비명을 지르면서도 살금살금 움직이며 기고 걸었다.
처음엔 청소를 하고 밀린 냉장고 정리를 했다. 두 개의 냉장고 냉동실 정리까지 마치니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히말라야 꼭대기까지 맨발로 뛰어갔다 온 기분이었다. 이것만 하고 쉬어야지 하다가 또 걸레를 빨고 걸레만 빨아야지 하다가 또 김치통을 작은데로 옮기고 고추장 통을 작은데로 옮기기만 해야지 하다가 또 황태육수를 내고 솔치육수를 냈다.
아~
집안일은 해도 해도 할 일이 너무너무 많다. 내가 이렇게 살림을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이번에 나도 처음 알았다.
아들은 엄마 아픈데 그만 쉬라면서 이것저것 요리하는 걸 보고 내심 좋아하는 눈치였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내가 무언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 같고 간호를 받는 게 아니어서 더 좋았다. 기분이 너무 좋아 갈비뼈가 개다리 춤을 추다 팅그러져도 모를 지경이었다.
두부 덮밥을 하고 발사믹 샐러드를 내고 배추 전과 팽이버섯 전을 부쳤다. 황태소고기 미역국을 끓이고 항정살을 동파육 간장에 살짝 구워 덮밥에 올려주고 파김치를 내었다. 물김치에 저녁을 내어주니 아들이 두 그릇을 뚝딱 비웠다.
"엄마 맛있어 맛있어"
"플레이팅이 바뀌었네?"
"응. 구차나서. 어차피 반찬 안 먹으니 밥 위에 반찬 한두 가지 영양가 맞춰서 올리고 물김치하고 김치에 샐러드만 내려고"
"이거 동남아 식인데?"
"그래? 그냥 엄마 편하게 한 건데.."
"나 이런 거 좋아. 우리도 이제 고기 한번 먹을 때마다 1k씩 먹지 말고, 끼니때마다 고기 해주라?
"그래. 엄마는 아무렇게나 해도 좋아. 잘 먹으면 다 이뻐"
그동안 아파서 맛있는 것도 많이 못해준 게 어찌나 한이 됐던지 마음에 응어리가 생긴 거 같다.
나는 오늘도 두부 새우젓 찌개를 끓이고 두부 소고기 볶음, 육젓마늘참기름무침을 비비고 올리브유 샐러드와 묵은지, 파김치에 막걸리수육을 예쁘게 썰어 상에 올렸다. 가족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참 행복했다.
어제 종일 움직여 갈비뼈가 엑스자가 된 거 같은데도 밥을 하는 거 보면 난 무기력증은 확실히 아닌 게 맞다!
난 단지..
이 만큼도 움직일 수 없이 진짜 아팠을 뿐이다. 지금은 숨이 안 차니 갈비뼈가 바스러져도 오른쪽 뼈를 잡고 움직이지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