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 가족의 해풍소
피곤하다. 머리도 아프고 옆구리도 너무 아프다. 아들은 밤을 새고 친구집에 놀러 갔다 와서 이제야 쿨쿨 잠을 자고 있다. 자는 걸 보면 참 이쁜데 입만 열면 미운 7살 같은 16살이다. 글쎄 친구집을 다녀와서는 하는 말이 참 이쁘기도 하다.
"엄마 태식이네 갔다가 깜짝 놀랐다."
"왜?"
"아니 우리 집 보다 더 더러운 집이 있더라고"
"그래? 우리 집이 더러워?"
(와우 머리를 씨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럼"
"어 그래.."
"개네 집은 어떤데?"
"아니 물컵이 없어. 우린 친구를 초대하면 간식이나 물은 기본으로 주자나?"
"응"
"거긴 각자 부엌에 가서 알아서 마셔. 아니 집에 컵이 3개밖에 없다는 거야. 컵이 없어서 물을 못 먹었다니깐"
"응. 친구 부모님은?"
"있었지. 태식이네 엄마"
"인사는 드렸고?"
"아니. 우리 갈 때까지 방에서 않나 오셔서 얼굴도 못 봤어"
"태식이네는 식구가 셋인가 봐?"
"아니. 넷 이래. 태식이 동생도 있어"
"그래. 근데 컵이 세 개야. 근데 우리 집은 어디가 더러워?"
"일단 설거지가 쌓여 있지. 세면대에는 아빠 수염이 돌아다니지, 내방하고 아빠방은 전쟁터지. 엄마 머리도 맨날 투탕카맨이지~~ 흐흐"
(복수다. 우리 집이 더럽데서 엄은 제일 어질러진 너의 방을 공개한다.)
"흠.. 설거지야 네가 아르바이트하는데 제때 안 해서 그런 거고. 니방하고 아빠방은 각자 안 치워서 그렇고. 세면대야 아빠 아침에 면도하고 갔을 때 엄마가 아파서 못 치웠을 때 그런 거고. 엄마 머리야 두통 때문에 머리끈해서 올라가서 그런 거고.."
"암튼 그래. 옛날에는 제자리에 없는 게 없었는데"
"그럼 태식이네는 어떤데?"
"응. 제자리에 있는 게 없어 ㅋㅋㅋ"
"아이고 미치겠다. 이놈아. 그건 너네 세대가 친구들 집에 많이 안 가봐서 그런 거야. 이런 집 저런 집 다 사정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잖아. 상황이 다르니 그럴 수 있지. 외할아버지 살아 계셨을 때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지경이었어."
"그렇겠지. 그래도 물컵은 있어야지. 물을 7시간 넘게 못 먹는 건 너무하지 않아?"
"컵 씻어먹지?"
"태식이가 컵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른데.."
"그럼 생수를 사다 먹지?"
"아까 태식이네 집 들어가기 전에 전화했잖아. 태식이네는 밥을 안 줘서 우리끼리 타코 사 먹고 들어가는 길이라고. 우리 돈 다 썼어."
"휴.. 그래. 그럼 다음부턴 텀블러를 가지고가. 큰 거로"
"아냐 괜찮아."
"왜?"
"태식이네 다음 달에 우리 집 옆으로 이사온데.
"우리 집에서 모이면 돼. 애들도 우리 집이 제일 편하데"
"그래. 엄마도 그게 났겠다."
(그려. 차라리 내 품에서 먹어라..)
요즘은 아이들이 친구집을 다녀온 경험이 없어서 다양성을 이해하기 힘든 거 같다. 우리 집 정도면 살림도 없고 중간은 하는 거 같았는데 엄청 지저분하다고 느끼는 거 보면, 내 아들이 배신자인지 세대가 그런 건지 모르겠다. 툭하면 엄마 머리는 맨날 투탕카맨이라고 놀리고. 엄마는 뚱뚱해서 펭귄 같다고 놀리고 나쁜 시키다. 그나저나 남편에게 오늘 아들이 한 얘길 꼭 해줘야겠다.
"자기야 아들이 우리 집 더럽다네"
"특히 아빠방하고 자기 방이 그렇고. 아빠가 세면대에 남기고 가는 턱털들이 좀 그런가 봐"
"뭐 해?"
"내 말 듣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