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가족의 해풍소
나는 싱글 매트에서 잠을 자곤 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너무 바짝 붙어 자는 바람에, 늘 새우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조그만 녀석이 일자로 자는 것도 아니고, 대각선, 가로로든 거리낌 없이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것이다. 결국 참다못해 더블 매트리스를 주문했다.
“아, 이제 좀 넓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넓어진 침대인데, 내 형편이 나아진 것 같지가 않다. 맞다, 그 이유였다. 매트를 바꿔도 고양이는 여전히 바짝 붙어서 잔다. 그러니 나는 고양이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또다시 몸을 웅크린다. 내 자세는 다시 부동자세가 되고, 숨도 조심스레 쉬게 되었다.
결국 문제는 넓이의 차이가 아니라, 이 녀석이 ‘붙어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자리만 그런 걸까?’ 마음의 자리도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겉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상황만 볼 게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도 들여다봐야 하는 거였다. 도대체 무엇이 고양이처럼 들러붙어, 나를 이토록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크게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마음 한구석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아들만 보면 “학교폭력은 왜 당하냐”라고 무심히 던지는 시아버지, “동두천으로 이사 와버려”라고 말하는 시어머니, 공부에 신경 쓰라며 툭툭 말을 던지는 시누이, 그리고 그 모든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남편.
이 모든 것들이 내 마음속에 불안 요소들이다.
나는 지금 마치 아이를 혼자 지키고 있는 기분이 든다.
정신과에서도 청소년 우울증은 성인과 다르다며 잘 살피라고 했는데, 시댁은 하지 말라는 말만 골라서 하는 것만 같다. 나는 아이를 좀 내버려 두고 싶다. 스스로 충분히 쉬고, 고민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기를 정할 수 있게 말이다.
우리 가족은 셋 다 정신과에 다니고 있는데, 내가 어찌 마음 편히 살 수 있겠는가. 나도 걱정도 하고, 살피기도 하지만,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나는 우리 시댁이 나라는 사람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당신들처럼 백발백중 하고 싶은 말 다 쏟아내고, 상대에게 지시만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그리고 남편.
제발, 적절한 순간에 나서서 그 고리를 끊어줬으면 좋겠다. 할아버지가 갈 때마다 학교폭력 얘기를 꺼내는 게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그건 좀 제발 눈치챘으면 좋겠다.
언제쯤 알게 될까.
남의 편, 내 남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