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6월 27일
공부는 외로운 싸움이다.
중3 아들이 자퇴를 하고 집에서 공부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더 힘든 것 같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응원할 준비는 되어 있지만, 재학생 부모의 역할과 학교 밖 청소년 부모의 역할은 확실히 다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흔치 않은 상황이라 나도 많이 혼란스럽다.
예전에는 학교 선생님께 배우고, 집에서는 조금만 챙겨줘도 상위권을 유지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선생님이 없다.
그래서 “학원이나 인강을 들어볼래?” 물어보면, 죽어도 싫다고 한다. 우리 아이는 학원은 오직 예체능이나 운동만 가겠다는 주의다. 학원에 대한 거부감이 워낙 강하니 결국 내가 가르치는 수밖에 없는데, 내가 무슨 수로 선생님 역할을 대신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엄마가 가르치면 이런저런 핑계로 안 하려고 하고, 반항심도 쉽게 올라온다.
솔직히 나 혼자 전 과목을 책임지는 건 너무 큰 무리다.
모르는 부분은 미리 예습해서 같이 풀어나가려고 해도, 내 체력도 멘탈도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이럴 때마다 학원 보내는 부모들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솔직히 너무 부럽다.
하지만 그 선택지는 지금 내게 없다.
공부가 버거운 아들을 보면 안타깝고, 대신해주고 싶을 만큼 마음이 아프다.
16살은, 뭐든 스스로 해결하기엔 아직 어려운 나이다.
함께해 주고, 기다려줘야 하는 걸 알면서도 요즘 그게 가장 어렵다.
학교에 다닐 땐 꿈도 많고, 호기심도 왕성했던 아이가 이제는 그냥 “공무원 돼서 먹고살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
내가 치맛바람이라도 일으켜서, 강하게 이끌어줘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아이의 뜻을 따라, 원하는 것만 해주며 뒤에서 묵묵히 기다려야 하는 걸까.
매일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여전히 아들은 친구들과 게임을 하고, 몇 시간씩 통화하며 웃고 떠드는 아이지만 학교폭력 이후, 학교와 사회에 대한 불신이 깊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다친 아이를 바라보며, 다시 상처를 메우고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는 게 참 어렵다. 그리고 참 아프다.
세상은 넓고, 하늘은 높지만 오늘 우리 아이의 세상은 얼마나 넓었고, 얼마나 높았을까.
나는 오늘도 아이와 외로운 싸움을 한다.
이시영 시인의 '성장이란' 시를 읽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