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통
며칠 전 나는 '나는 솔로'를 봤다. 싱글들이 나와 서로의 짝을 찾는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굉장한 감정의 사선들이 뒤엉켜진다. 때로는 서로를 알아보는 과정을 확신으로 착각하고, 상대에 관한 배신감에 마음 상해하는 모습을 봤다. 누군가는 플러팅이라 하고, 누군가는 꼬리 친다고 하는 이 감정의 사선들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실 ‘착각’은 사랑의 본질에 가깝다. 누군가의 미소 한 번에, 내게 호감이 있다고 믿어버리고, 짧은 대화 속에서 깊은 연결을 상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단순한 친절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때 느끼는 허탈감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착각이 준 교훈일지도 모른다.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착각한다. 내 마음과 같은 마음일 거라는 착각, 영원할 거라는 착각, 지금 이 감정이 진짜라고 믿는 착각. 하지만 따지고 보면 착각이 있었기에 우리는 사랑을 시작할 수 있었다. 확신이 없이는 누군가에게 다가갈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결국 착각은 실수이자 동시에 용기다.
나는 오히려 착각이 주는 순간의 빛깔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빛깔 덕분에 설레고, 하루가 특별해지고, 누군가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진다. 물론 언젠가는 그 빛깔이 바래져 실망으로 다가오겠지만, 그때 알게 될 것이다. 착각이 없었다면 애초에 사랑의 첫걸음조차 없었음을.
그래서 나는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싶다. 착각은 어쩌면 사랑이 입는 첫 옷이다. 그 옷이 벗겨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서로의 맨얼굴을 마주한다. 어떤 관계는 그제야 더 단단해지고, 어떤 관계는 그제야 끝을 맞는다. 어찌 되었든, 착각은 우리를 앞으로 한 발 내딛게 만드는 힘이다.
또 살다 보면, ‘착각’이란 단어가 은근히 자주 따라붙는다.
버스를 내려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는데, 현관 앞 신발이 낯설다. 순간, ‘아 맞다, 이사 왔지’라는 생각이 늦게 따라붙는다. 한 달이나 지났는데도 발걸음은 여전히 예전 집을 기억하고 있다. 몸이 먼저 움직이고, 머리가 뒤늦게 수정하는 그 짧은 시간. 그건 착각이면서도, 동시에 내 삶이 지닌 습관의 무게다.
착각은 늘 실수만 불러오는 건 아니다. 누군가 나를 불렀다고 착각해 돌아봤을 때, 마주친 건 뜻밖의 미소였다. 그것 하나로 기분이 한참 좋아졌다. 마치 세상에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환상에 잠시 빠진 것처럼. 누군가는 그걸 헛것을 본 거라 말하겠지만, 그 착각이 하루를 단단히 붙잡아주기도 한다.
나는 자주 착각한다. 내가 여전히 젊다고, 아직 시간이 많다고, 가족은 늘 내 곁에 있을 거라고. 하지만 흰 머리카락이 거울에 비치고, 부모님의 빈자리기 느껴질 때 깨닫는다. 내 착각이 얼마나 순진하고 얼마나 애틋한 것이었는지.
어쩌면 착각은 인간이 살아가는 작은 방패인지도 모른다.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기엔 삶이 너무 거칠기에, 우리는 잠시 착각 속에서 숨을 고른다. 착각은 실수이자 위로, 오해이자 휴식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은 기꺼이 착각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