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여기요
유난히 찌뿌둥한 날이었다. 김기사는 오후 출근을 했다.
택시 정거장에는 대기 중인 택시가 한 대도 없었다. 김기사가 정차하자마자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천호 등촌동 샤브샤브 가주세요.”
“네.”
“모임 있으신 건가 봐요?”
“네, 가족 모임이요.”
“좋은 날이시네요.”
“아니요, 시부모님 생신이에요.”
“아, 시부모님 생신이면 좋은 날이잖아요.”
“그런가요? 그런데 왜 시부모님 생신이면 꼭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해야 하죠? 이 바쁜 세상에? 친정 부모님 생신 때는 모이지 않잖아요. 용돈만 드리면 되잖아요?”
“아… 그러시구나. 저는 몰랐네요. 보통 친정 부모님 생신도 찾아뵙지 않나요?”
“아니요. 친정일은 거의 챙기지 않으면서 시댁일은 사소한 일만 있어도 모이는 게 한국 문화잖아요. 저는 이해가 안 돼요.”
“그러셨구나. 많이 서운하셨겠어요. 그럼 이제부터라도 친정 부모님도 좀 챙겨 보시죠.”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네, 아직도 우리나라가 시가 중심 문화가 많이 남아 있죠. 저도 딸이 있어서 그 마음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딸이야 힘들까 봐 오지 말라고 하고 쉬라고 하는데, 시부모님들은 그렇지가 않죠. 언제 오냐고 전화부터하시잖아요. 며느리 입장에서는 힘들고 속병 생길 만도 합니다.”
“맞아요, 아저씨. 이럴 줄 알았으면 외동아들이랑 결혼 안 했을 거예요. 이건 당신 자식만 귀하게 여기는 거예요. 저도 집에 가면 귀한 딸인데요. 아무튼 말로 다 할 수는 없지만,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결혼이라는 게 참 많이 불평등해요.”
“불평등해도.. 남편분 사랑하시잖아요.”
“아니요, 이제는 사랑 안 해요. 여러 일을 겪고 나니까 사랑도 다 씻겨 내려가더라고요.”
김기사는 백미러로 잠시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늘게 떨리는 입술, 깊게 패인 한숨. 그 속엔 수많은 날들이 묻어 있었다.
“그래도 남편분은 아직도 새댁 같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 마음까지는 꼭 믿으셨으면 합니다.”
여인은 잠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다가, 이내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오늘 저녁은 시댁 식사지만, 내일은 친정에 들러볼게요. 오랜만에 엄마랑 밥 먹으러 가야겠어요.”
차창 너머 저녁 햇살이 살짝 기울며 도로 위를 붉게 물들였다. 김기사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핸들을 다시 힘 있게 잡았다.
오늘의 길은, 조금은 따뜻하게 이어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