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여기요
점심시간이 막 지난 오후, 도심의 빌딩 숲 사이로 햇빛이 반짝였다. 횡단보도 앞에는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들고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잠시 신호에 걸려 차를 세우고, 좌회전 표시등을 확인하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인도 쪽에서 한 남자가 손을 번쩍 들며 달려왔다.
멀리서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낯선 피부색, 어딘가 긴장된 걸음걸이. 외국인이었다.
“택시! 예, 코엑스!”
그가 서툰 발음으로 외쳤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네, 타세요. 코엑스 가시죠.”
남자는 연신 “Thank you, thank you.”를 말하며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
차가 출발하자, 남자는 가방을 꼭 움켜쥔 채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잔뜩 묻은 얼굴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출장이세요?”
“예… 오늘… 한국 회사 미팅 있어요.”
그가 느린 한국어로 답했다가 곧 영어로 말을 바꿨다.
노트북을 살짝 열어 보여주자 그 안에는 빽빽하게 채워진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보였다.
“중요한 발표 있어요. 오늘… 제 일… 아주 큰 날이에요.”
그의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 그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 한국 음식… 맛있어요.”
나는 잠시 놀라 백미러를 바라봤다.
“아, 그러세요?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저… 소고기 불고기! 너무 좋아요.”
그는 양손을 들어 고기를 집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김! 바삭바삭… 아이들, 김 아주 좋아해요.
돌아갈 때… 김 많이 사가지고 갈 거예요.”
그의 얼굴에 그제야 조금의 생기가 돌았다.
가족 이야기를 할 때는 눈빛이 따뜻하게 빛났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일… 힘들어요. 한국… 규칙 많아요. 첫 만남에 명함, 두 손으로 주고… 인사… 몇 도로 해야 하나 헷갈립니다.”
그는 손으로 허공에 각도를 그리며 난감하게 웃었다.
“술자리… 가장 힘들어요. 저 술 못 마셔요.
근데… ‘죄송함더, 못 마심더’ 하면… 사람들 그냥 웃습니다.”
그 웃음이 조금 서글프다는 듯, 그의 입꼬리가 살짝 내려앉았다.
나는 그저 짧게, “네…” 하고 대답했다.
그의 속내가 너무도 진심이어서 괜히 위로의 말을 얹기 그랬다.
“그래도요…”
그가 창밖을 잠시 보다가 말을 이었다.
“한국은… 좋아요. 좋고 싫음… 아주 확실합니다.
‘예스’ 아니면 ‘노.’ 일할 때… 그거… 아주 편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힘들어도… 여기서 많이 배웁니다. 제가… 강해지고 있어요.”
나는 그 말에 마음 한편이 찡해졌다. 그의 삶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기에, 그 작은 긍정이 더 크게 다가왔다.
코엑스가 가까워지자 유리 벽을 따라 빛나는 빌딩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남자는 긴장한 듯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손끝이 또다시 떨리고 있었다.
“아저씨, 오늘… 제 얘기 들어줘서… 감사합니다.”
그가 서툰 한국어로 조심스레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남자는 차에서 내리며 두 손을 모아 정중히 인사했다.
그리고 로비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결연해 보였지만, 그 뒷모습은 어쩐지 쓸쓸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낯선 나라에서 홀로 싸우는 작은 그림자 같은 그 사람을, 차창 너머로 조용히 지켜보았다.
택시는 그를 목적지에 데려다주었지만, 그가 떠안은 외로움과 두려움만큼은… 끝내 내려줄 수 없다는 걸
그때 나는 깊이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