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퇴하는 날

택시 여기요

by 이음

수요일 오후 2시.
햇살은 따뜻했지만 바람은 아직 쌀쌀했다.
점심 러시아워가 끝난 한산한 도로 위로 간간이 학원차와 택시가 오갔다.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조용히 카카오콜을 기다렸다.

“띠링—”
알림음이 울렸다.
목적지: ○○고등학교 → 건대입구
승객 인원: 1명.

‘이 시간에 고등학교? 아직 수업 중일 텐데…’
고개를 갸웃하며 방향을 틀었다.


학교 앞에 도착하자, 교문은 조용했다.
운동장 한쪽에서는 체육 수업을 하는 듯 멀리서 학생들 웃음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교문에서 나온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교복 자켓을 단정히 입고, 가방을 어깨에 반듯하게 멘 남학생이었다. 걸음은 침착했지만, 그 속에는 묘한 결심이 서려 있는 듯 보였다.

그가 차에 다가와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기사님, 건대입구요.”


“네, 타세요.”

문이 닫히자 나는 출발하기 전 슬쩍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학생, 아직 수업 시간일 텐데… 어디 아파서 조퇴하나?”

남학생이 미묘하게 웃었다.
“아니요, 아픈 건 아닌데요…”
그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낮게 덧붙였다.
“오늘이… 제 마지막 등교라서요.”

차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나는 속으로 ‘전학 가나 보다’ 생각하며 물었다.
“전학 가는 거야?”


“아뇨, 자퇴해요.”
짧지만 확실한 대답이었다.
순간, 차 안의 공기가 묵직해졌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핸들을 더 꽉 잡았다.

“다들 이유를 묻죠.”
남학생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입시 때문에요. 내신 받아서 생기부 만들기가 힘드니까요. 자퇴하고 검정고시 봐서 대학 가는 게 더 쉽거든요.”

“공부… 열심히 해도 내신 채우기 힘들어요.
문제집 풀고, 성적이 올라야 할 맛이 나죠.
어느 순간부터 제자리 지키기도 힘들더라고.
공부다운 공부가 아니라 ‘생활기록부 채우기’만 되더라고요. 무슨 동아리, 무슨 봉사활동…
다 제가 원해서 한 게 아니니깐요.
‘좋은 대학 가려면 해야 한다’는 말 때문에 한 것들이었어요.”

그는 창밖을 잠시 바라보았다.
멀리 교문 안쪽, 친구들의 교복 자락이 운동장 바람에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수업은 하고 있지만, 정작 저 자신은 그 안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적만 있는..”

나는 조심스레 한마디 던졌다.
“그래도 학교를 그만두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인데…”

그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쉽지 않았죠. 교무실 들어가서 서류 쓸 때, 손이 덜덜 떨리더라고요.
근데 그 서명을 하니까 오히려 숨이 쉬어졌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수능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학교가 아니라, 저만의 자리에서. 누가 보라고 하는 공부가 아니라,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로요.”

건대입구역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그는 차에서 내리기 전, 백미러 너머로 나를 바라봤다. 눈빛이 이상하게도 단단해 보였다.

“기사님,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생, 힘든 길이겠지만 꼭 후회 없는 선택 하길 바래요.”


“네, 감사합니다.”

그는 가방을 단단히 메고 복잡한 거리 속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마치 ‘학생’이라는 껍질을 벗고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한 사람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