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통
나는 하루 종일 아들과 함께 지낸다.
아들이 자퇴를 했으니, 학원에 다녀오는 시간을 빼면 우리는 거의 하루 종일 붙어 있다.
청소년기라 그런가, 친구들과 얘기할 땐 입에 욕이 붙어 사는데, 방금 한 말이 너무 웃겨서 깜짝 놀라 버렸다.
“ㅈ됨을 감지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보니 신기한 얘기였다.
요즘 아이들이 하는 게임 이야기였다.
기존의 게임은 한 편의 영화처럼 정해진 시나리오를 따라간다. 플레이어는 이미 완성된 스토리 속을 걷는 여행자일 뿐이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Trigger 게임’은 다르다. 이 게임에서는 사용자의 선택이 곧 이야기의 방향이 된다. 한마디로, 매 순간 대본이 새로 써지는 셈이다.
우리 아이는 이 게임에서 전기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A를 누르면 친구가 살아남고,
B를 고르면 진실이 드러나며,
C를 택하면 전혀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플레이어의 한 선택이 다음 장면의 문을 여는 것이다.
마치 조선 후기 소설을 낭독하던 전기수처럼,
게임 안에서도 누군가는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 설명을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우리의 인생도 어쩌면 그런 Trigger 게임 같지 않을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우리는 수많은 스위치를 마주한다. 말을 할까, 침묵할까. 포기할까, 한 번 더 해볼까. 그 작은 선택들이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누군가는 실수를 스위치라 부르고,
누군가는 용기를 스위치라 부른다.
하지만 어떤 스위치를 눌렀든,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여기까지 온 건 분명하다.
그래서 요즘은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보다
‘오늘은 어떤 스위치를 눌러볼까’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물 한 잔을 마시며 창밖 햇살을 바라보는 것도,
누군가에게 먼저 안부를 묻는 것도,
그저 작은 스위치를 하나 누르는 일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내 이야기의 배경도, 결말도 조금씩 달라져 있다. 누구도 대신 써줄 수 없는 나만의 시나리오로 말이다.
나는 지금 또 하나의 스위치를 누른다.
당신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