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의 길이

수필통

by 이음


숨이 차다.
이 숨은 좋은 숨이다. 심장이 아파서 터져 나오는 숨이 아니라, 운동으로 얻은 건강한 숨이기 때문이다.

다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집에서 서울까지는 한 시간 거리지만, 요즘은 체력이 달려서 공연 하나도 보러 가기 벅차다. 그래서 걷기를 시작했다. 한 시간쯤 걸으면 오천 보, 두 시간 걸으면 만 보가 된다. 아직은 오천에서 팔천 보 사이를 오가고 있다.

여름엔 늘 그랬다.
‘좀 시원해지면 걸어야지.’
그랬더니 금세 가을이 와 있었다.
가을이 오자마자 비가 연신 내리더니
이제는 겨울이 금방이라도 올 것만 같았다.

‘이러다 또 겨울이 되면,
따뜻해지면 걸어야지 하겠구나.’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그날부로 걷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던 중, 강아지를 한 마리씩 산책시키는 두 분의 할머니를 만났다. 두 분은 나란히 걸으며 옥신각신하고 계셨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다.

“개 줄을 바짝 당겨야지, 자꾸 우리 개 쪽으로 넘어오잖아.”


“줄을 그렇게 당기면 애가 어떻게 걸어. 좀 여유 있게 풀어줘야지.”


“줄이 길면 우리 뽀삐 줄에 엉키잖아. 자꾸 넘어와서 엉키니까 그렇지.”


“개가 개한테 가는 게 뭐가 문제야. 그러면 어디로 가라고?”

요약하자면 이랬다.
한 분은 줄을 짧게 잡아 강아지가 옆으로 가지도 못하게 하고, 다른 분은 줄을 느슨하게 풀어 강아지가 이리저리 참견하다 줄이 엉켜버린 상황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떠올랐다. 줄을 바짝 당긴 강아지는 불편하고 제약이 많은 걸려 있는 우크라이나 같았고,
줄을 느슨하게 풀어놓은 강아지는 여유롭지만 어딘가 방심한 미국 같았다.

강아지 둘이 줄을 꼬며 엉켜가는 모습을 보니 꼭 뉴스에서 보던 국제정세 같았다. 누군가는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 하고, 또 누군가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자기 자리를 주장한다. 그 사이에서 꼬여버린 건 결국 ‘줄’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사람 사이의 거리도, 나라 사이의 거리도
결국은 저 개줄처럼 적당히 조절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너무 바짝 당기면 숨이 막히고, 너무 느슨하면 서로를 잃는다.

걷는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 삶에도 너무 당겨진 줄이 있을까, 혹은 너무 풀어버린 관계는 없을까.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마음속 줄이 살짝 느슨해졌다. 그제야 비로소 숨이 조금 더 편안해졌다.

그렇게 걷다 보니 깨달았다.

걷기든 인생이든 결국은 호흡의 길이였다.

내 숨이 닿는 만큼, 내 마음이 닿는 만큼만..
오늘은 그만큼만 걸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