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통
샬롬~
한 해의 땀방울이 한 시험지 위에 누워 고스란히 숨을 트이는 날이었습니다.
올해의 필적문구는
참 묘했어요.
어쩌면 그렇게 한 줄 문장이 계절과 사람을 동시에 닮을 수 있을까요.
“초록에 마음껏 흠취할 준비 되셨나요?”
시험감독 선생님의 반 농담 속에서
아이들의 손끝은 어느 때보다 바르고 뜨거웠습니다.
시험장이란 공간은 항상 조용하지만,
그 속에는 수백 가지 마음이 바다처럼 출렁입니다.
어떤 아이는 후회를, 어떤 아이는 자신감을, 어떤 아이는 그냥 지친 하루를 시험지 위에 올려놓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어요.
누군가에게 초록은
막 움트는 새싹 같은 용기일 테고,
누군가에게 초록은
지난 시간을 덮어주는 포근한 위로일 테지요.
또 어떤 아이에게는
도무지 자라지 않아 마음을 아프게 하는 색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초록은 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비를 맞든 바람을 맞든,
잠시 눕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색.
나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생명의 의지 같은 색.
그래서일까요.
아이들이 첫 획을 쓰기 위해 펜을 드는 순간,
그 작은 떨림이 왠지 모르게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해 동안 쌓아온 초록이
종이 위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시험이 끝나고 복도에는
안도의 숨, 아쉬운 한숨, 미묘한 웃음이 뒤섞여 흘렀습니다.
각자의 초록을 가슴에 품고 걸어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복도에는
아이들의 초록만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멀리서 휴대폰을 꼭 쥐고,
첫 연락을 기다리던 부모님들의 마음도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잘 봤어?”
그 단 한마디를 건네기 위해
하루 종일 애탔던 사람들.
부모라는 이름은
늘 가장 조용한 자리에 있으면서
가장 크게 흔들립니다.
아이는 문제를 풀었지만
부모는 마음을 수십 번 접었다 폈을 겁니다.
‘부담 주지 말아야지.’
‘그래도 잘했다고 안아줘야지.’
이 두 감정 사이에서
조용히 떨리고 있었겠지요.
친구야,
아이를 키운다는 건
우리도 매일 시험을 치르는 일 같아.
‘이 선택이 맞을까?’
‘이 말이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정답 없는 문제를 붙들고
끝없이 고쳐 쓰는 사람들.
그게 부모잖아.
그래서 오늘 나는
고생한 모든 부모님의 마음을
살며시 쓰다듬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 잘하고 있어요.
오늘 하루, 당신도 아이만큼이나 시험을 치렀습니다.
마음 졸였고, 기다렸고, 묵묵히 함께 걸어냈습니다.
아이의 초록이 성장하는 동안
부모의 초록도 어느새 더 깊어졌다는 걸
아마 당신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