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에도 가을이 왔다

수필통

by 이음


얼마 전, 작은 언니네에 갔을 때 일이다.

거울을 보는데 흰머리가 여기저기 퍼져 있었다.

분명 앞머리에만 몇 가닥, 애교처럼 자라던 아이들이었는데 이젠 옆에도, 뒤통수에도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었다.


“악, 어뜨케! 흰머리가 많아졌어.”


“날 때 됐지.”


“아니, 앞에만 몇 가닥 있었는데… 이젠 전체 염색해야겠어.”


“으유, 재는 호들갑두.”


“잉… 난 몰랑.”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각해 보니

세상엔 흰머리가 참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다.

은빛 머리에서 묻어나는 중후함, 세월의 멋.

하지만 나는 아직 중후하진 않다.

말하자면 어설프다.

검은 머리가 훨씬 나다운 시절,

아직은 조금 덜 익은 인생이라 그런가 보다.



곰곰이 보면 흰머리는 남자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들의 주름과 흰머리는

경험의 흔적으로 읽히는데,

여자에게는 아직도 ‘관리를 놓친 흔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은 흰머리인데 왜 이렇게 의미가 다를까. 참 이상하다.


그래서 요즘은 흰머리가 생길 때마다

괜히 빗으로 눕혀 세어 본다.

‘몇 개를 뽑아야 하나.’

이렇게 중얼거리다 보면

정말 대머리가 될 것 같아 조용히 빗을 내려놓는다.


가을이 단풍을 물들일 때

나이도 해마다 한 살씩만 먹는데

흰머리는 왜 왕창, 갑자기 생기는 것인가.

머리칼도 나뭇잎처럼 조금씩 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이드는 것도 서글픈데

머리는 하룻밤 사이에 하얘지고

허리도, 무릎도 왠지 모르게 시큰거린다.


언젠가 내 머릿결이 전부 흰빛이 되어도

그땐 그것 나름의 빛이 되길 바란다.

검은 머리의 시절보다 조금 더 부드럽고,

조용히 단단한 나로 남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흰머리는 늙어가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날들의 흔적일지도 모른다고.

버티고, 울고, 웃고, 견뎌낸 시간들이

한 올, 한 올 흰빛으로 올라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괜히 구박할 필요도 없겠다.

내가 지나온 길을 감쪽같이 숨기고 살기엔

이 나이의 나도 꽤 괜찮으니까.


조금씩 하얘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이제야 비로소 안다.

익어가는 것은 서글픔이 아니라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언젠가 내 머리가 모두 하얗게 물들면

그때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아, 드디어 나도 내 속도의 색을 찾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