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가 나를 일시켰다

수달 가족의 해풍소

by 이음


연휴가 한참인 2월.

만사 귀찮을땐 뜨끈허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등뼈를 잡고 뜯는 것이 제맛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돼지등뼈 2k를 준비했다. 깨끗한 등뼈를 뜨겁게 한번 펄펄 끓여 물을 버리고 다시 불에 올려놨다.

그리곤 김치냉장고에서 감자를 꺼냈다.


남편은 조금 웃긴다. 예전에 툭하면 감자탕 끓여줄 때마다 같은 얘기를 하고 또하곤 했었다.

"자기야 감자탕 이름이 왜 감자인 줄 알아?"

"아니"

"사람들은 감자를 넣어서 감자탕인 줄 아는데 감자탕에 감 자가 뼈감자를 써서 감자탕이 라고 하는 거야. 야채 감자가 들어가서가 아니고"

"응"

여기까지 한 번은 좋았다. 그런데 이거를 몇 년은 울어 먹이는 거다. 그래서 그 이후로 감자탕에 감자를 거의 넣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제는 또 다른 말을 한다.

"자기야 감자탕에 감자는 어디 있어?"

"안 넣었는데 왜?"

"감자탕에 감자가 있어야지"

이러면서 감자를 꼬박꼬박 찾는다. 집에 감자가 항시 있는 게 아니기에 있으면 넣고 없으면 안 넣은 것인데 이제는 감자가 있을 때만 감자탕을 끓이게 됐다.

감자를 깎다 보니 감자가 얼은 것이 아닌가. 어머나! 김치냉장고가 감자들은 죄다 얼려놨다. 이를 어쩐다! 냉동 감자를 감자탕에 넣을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안 언 감자 두 개만 빼고 전부 감자전을 부치게 됐다.


오늘은 감자탕 말곤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었는데.. 감자를 다 꺼내 깎으니 감자만 한 바구니가 됐다. 그 시간 오래 걸리는 감자전을 할 수 없이 강판에 다 갈아 감자전을 부쳐 버렸다.

식구들은 감자탕에 감자전을 맛나게 먹었지만 부엌에서 세 시간 서있던 내 다리는 호덜호덜 가엾게 흔들렸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애를 쓰면서도 매번 감자탕을 끓이고 있는 나 자신이다.
사람 마음이 원래 그렇다.
고생은 분명한데, 그 고생 속에 또 기쁨이 섞여 있다.

감자전을 한 접시 내어놓자 남편이 말했다.

“자기야, 감자튀김보다 이게 더 맛있다. 우리 다음엔 감자전만 먹을까?”

그 말을 들으니,
방금 전에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라고 소리쳤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몇 시간 동안 부엌에서 노동하느라
허리가 비명을 질렀던 건 분명 나인데
그 한마디에 또 마음은 스르르 풀렸다.

이상하다.
고생은 늘 내가 하고, 남편은 꼭 선심 쓰듯 칭찬을 한다.
그런데도 그 한마디에 나를 다시 부엌으로 돌아서게 한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단한 거였던가!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시계가 어느새 밤 9시를 넘기고 있었다.
하루가 거의 끝나가는데,
정작 내가 먹은 건 감자전 한 조각이 전부였다.

그런데도 속이 이상하게 든든하다.
힘은 들었지만,
오늘 하루의 마음 빛깔은 묘하게 따뜻했다.

생각해 보면,
가정이라는 게 다 이런 ‘예상치 못한 번거로움’으로 굴러가는 것 같다.
계획엔 없었지만,
결국 나를 일으킨 것도 감자였고
가족을 웃게 한 것도 감자였다.

오늘의 교훈은 단순하다.
감자탕에 감자는 일단 넣어라.

그리고 나는 또 내일,
김치냉장고를 열어보고 깜짝 놀라겠지.


“얘… 또 얼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