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 가족의 해풍소
생각은 멈춰 있어도 마음은 애를 쓴다.
의식이 쉬는 시간에도 마음은 조용히 무언가를 염원한다는 말이다.
나는 아이가 외고 입학설명회에서 지었던 표정을 잊지 못한다.
호수처럼 반짝이던 눈, 비 온 뒤 무지개처럼 밝아진 얼굴.
그 설렘이 아이의 전신에서 빛처럼 뿜어져 나왔다.
중학교를 자퇴하고 학교에 대한 정은 이미 바닥이었던 아이가
그날 처음으로 말했다.
“엄마, 나… 이 학교 다니고 싶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가 다니고 싶으면, 엄마가 꼭 다니게 해 줄게.”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등 뒤에서부터 걱정을 하나씩 주워 담기 시작했다.
안 되면 어쩌려고 그런 장담을 했을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아이의 기둥이 되어주고 싶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걸
엄마인 내가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
입학설명회가 끝난 날부터
나의 열공이 시작됐다.
서류를 읽고, 원서를 연습하고,
자소서를 쓰고 고치고 또 쓰고.
마음은 늘 조마조마했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다.
겉은 평정이었지만
무의식은 쉬지 않고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원서 작성일이 왔다.
1차를 무사히 넘긴 안도는 잠시뿐.
긴장이 풀린 순간, 나는 안면마비가 왔다.
병원에서는 대상포진을 의심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몸이 먼저 말해준 것이다.
‘당신, 지금 너무 애쓰고 있어요.’
아이가 물었다.
“엄마… 나 떨어지면 어떻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붙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야.
떨어지면 또 그 길이 있는 거지.
우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선택한 거야.
지금 해야 할 일은
불확실함을 잘 기다리는 거야.”
그리고 결과가 왔다.
1차 합격.
면접 합격.
최종 합격.
아이의 얼굴이 다시 빛났다.
나는 너무 기뻤으며
안도했고
감사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이의 합격과 동시에
내 안의 거대한 무의식이 무너져 내렸다.
모든 긴장이 빠져나가자
깊고 짙은 무기력이 찾아왔다.
잠도, 밥도,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흔들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동면을 택했다.
그리고 지금,
번데기 안에서 조금씩 꿈틀거린다.
껍질을 찢고 나올 준비를 위해서.
이젠 시간이 되었다.
새 공기를 마실 시간.
나의 이른 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