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다

수달 가족의 해풍소

by 이음

밤이 깊다.

어째 올해도 시작부터 부산스럽다.

독감이 식구들을 돌아가며 애를 먹였다. 겨우 지나가나 싶었는데, 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가자마자 이번엔 내가 재감염 기미로 몸이 으슬거렸다.


그리고 등교 하루 만에 아이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다.군중이 몰릴 때마다 공황발작이 다섯 번이나 왔다고 했다.그동안은 우울증 치료만 받아왔는데 이런 증상은 처음이었다.


“엄마, 살려줘. 데리러 와줘.”


전화를 끊자마자 기숙사로 달려갔다.사정을 설명하고 이틀 외박을 낸 뒤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식당에서도 사람이 몰리면 숨이 막혀 밥을 못 먹었다기에, 집에서 조용히 밥을 먹였다.


아이는 과호흡과 부정맥, 현기증에 넋이 나가 있었다.이것도 못 견디는 자신을 탓하며 스스로를 실패자라 몰아붙였다.일주일은 참아보려 했다지만, 우울증 약으로 공황발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루 재운 뒤 다니던 정신과를 찾았다.의사는 “전형적인 공황발작”이라고 했다.그동안 자퇴 후 그런 상황에 노출되지 않아 몰랐던 것 같다고도 했다.가장 좋은 건 치료와 노출을 병행하는 것이지만,결국 선택은 우리 상황에 맞게 하라고 했다.


아이 아빠는 넋이 반쯤 나간 상태이다.분을 참지 못하고 아이를 힘들게 했던 아이들을 찾아가고 싶다며 울었다.아이는 좌절에 잠겨 있고,나는 둘 사이에서 평정심을 붙들었다.


우리는 우선 자퇴 후 수능을 보는 길도 있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약을 복용하며 기숙사가 아닌 통학을 해보는 방법도 생각해보자고 했다.


아이는 혼잣말처럼 일본어를 중얼거리다,기도하듯 울다가 잠들었다.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사람 하나 만드는 게 어디 그리 쉽겠어.”


“나도 아직 사람이 다 못 됐는데, 무슨 사람을 만들겠어.”


그렇다.우리는 부모가 되어가는 중이다.그래서 같이 아프고, 같이 흔들린다.이 어려움을묵묵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나는 내일, 또 그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자퇴일지, 통학일지 몰라도 나는 아이를 살리는 방향을 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