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달 가족의 해풍소
너무도 울었다.
참아왔던 설움을 기록한다.
우리는 금요일에 외고를 자퇴하고 왔다.
나는 보통의 나날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일을 처리했다.
기숙사로 가서 짐을 싸고, 교무실에서 자퇴서를 작성했다.
그 사이 아이는 담임선생님께 말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오면 꿈이 선생님과 일본어로 대화해 보는 거였다고.
그래서 선생님과 일본어로 대화를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이와 선생님은 일어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때부터였을까.
아이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신이 난 아이의 얼굴을 보는데, 내 마음은 숨죽여 울기 시작했다.
전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통학이라도 해볼지, 아니면 일반고로 전학을 가는 방향을 생각해 볼지.
나는 아이를 여러 번 설득해 보았다.
그러나 아이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자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잘하는 일일까?”
마음속에서는 계속 고민되고 망설여졌지만
자퇴 절차는 끝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근처 숯불갈비집에 갔다.
아이가 좋아하는 갈비를 원 없이 먹으라고 했다.
냉면에 갈비를 실컷 먹이고 집으로 돌아온 후
그때부터 나는 병이 났다. 짐을 풀고 청소를 하고 나니 기침이 나고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온몸이 쑤시고 으슬으슬 아팠다.
남편은 넋이 나가 버렸다. 밥도 계속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툭하면 눈물이 흐른다고 했다. 회사에 가서도 눈물이 계속 난다며 카톡을 했다.
나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시간 외에는
계속 끙끙 앓았다.
“이게 잘한 일일까.”
그다음에는
“내가 뭘 잘못했을까.”
그리고 그다음에는 내 마음이 녹아내린 듯 어디에 있는지 느껴지지 않았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지 않았고 말하고 싶은데 어디다 말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내 아이가 아파요.
엄마는 우울증인데 아이는 청소년 우울증에 공황장애래요.
다 엄마 때문이겠죠.
공부 잘한다고 칭찬했더니
공부를 잘하게 컸다.
반장이 되었다고 칭찬했더니
계속 반장이 되었다.
정의롭게 살라고,
약자를 보호하라고 가르쳤더니
일진들에게 당하는 반 아이들을 보호하다가
일진들의 표적이 되었다.
요즘 세상에 졸업 아니어도 길은 많다고 가르쳤더니
자퇴를 두 번이나 하게 되었다.
세상에 꼭 공부가 다는 아니라고 가르쳤더니
공부를 포기했다.
스승을 하늘같이 섬기라고 가르쳤는데
스승님이 일진 편에 서서 윽박지르는 모습을 보며
아이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아이는
내가 말한 대로 자랐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뒤였다.
뭉개지는 가슴을 감추고 밥을 해 먹이고
다시 방에 들어와 앓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오늘 저녁
남편이 갑자기 밥상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내 방에서 밥 먹게.”
“응. 너 많이 먹으라고. 아프니까 많이 먹어야지.”
부대찌개를 떠먹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시작됐다.
“엄마 낮에 덕진이 왔었잖아.”
“응.”
“덕진이가 미디어고 떨어졌어도 공부는 나보다 잘하거든. 걔가 이과 계열이라 아까 수학 진도 나가는 거 수준 평가해 줬어. 이번 여름방학까지 수학 진도 다 떼준대.”
“공부하게?”
“대학 안 가고 말발굽이나 깎는다며?”
아이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생각해 봤는데 엄마가 그랬잖아.
쥐뿔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세우면 못 산다고.
납작 엎드릴 때를 알아야 한다고.
내가 그런 것 같아.
공부 잘하는 친구가 먼저 공부 가르쳐준다자나.
애들 진도 나가는데 나만 알바하면서 놀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말발굽 깎는 사람이 된다고 쳐봐.
그건 젊어서만 가능한 직업인데 늙으면 어떡해?
그리고 말한테 걷어차여서 전치 몇 주 나오면
그때는 뭐로 먹고살아? 그래서 공부 다시 하려고.”
“그동안 엄마랑 아빠가 너한테 말은 못 했지만
속이 다 썩어 없어지는 줄 알았어.”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그동안 참고 있던 눈물이 해갈되듯 쏟아져 나왔다.
“생각해 봐. 누구랑 누구랑 너랑 같은 레일에서 출발했어. 경주마들이 달리는데 아이들이 네 말에 돌을 던졌어. 너는 그 길로 주저앉아 경주를 포기했어. 엄마 심정이 어떻겠어. 다시 일어나 달려야지. 왜 네 잘못이 아닌데 네 인생만 부러져야 하냐고.”
아이가 말했다.
“그래서 엄마 다시 공부도 하고 대학도 가려고.
엄마 그러니까 울지 마.”
“일단은 임용도 보고 일어 교사도 되고 싶고. 말 수의사도 되고 싶어. 다시 일어서 볼 테니까
엄마 너무 아파하지 마.”
“알겠어. 고마워. 정말 마음이 사라진 것 같았어.
다 녹아서 어디 갔는지 모르겠더라고.”
“목표를 꼭 잡고 다시 해보자. 엄마가 도와줄게.”
우리는 자퇴의 상흔 위에 다시 색을 덧칠하듯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부모란 무엇일까.
아이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봤다는 이유로 앞에서 길을 가리키는 사람일까.
아니면 아이가 넘어질 때 조용히 뒤에서 흙을 털어주는 사람일까.
부모는 아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다시 살아갈 힘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버텨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의 실패를 대신 막아줄 수는 없지만 아이의 절망이 영원한 절망이 되지 않도록
기다려 주는 사람.
그리고 아이가 다시 일어나 신발끈을 묶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서 있는 사람.
아마 그런 사람 아닐까.
내가 부모의 뜻을 다 알게 될 즈음 우리 아이는 이미 다 커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세상에 많은 아이들의 신발끈을 응원한다.
멈추더라도 다시 일어서기를.
그리고 각자의 길 위에서
다시 걸어가기를.
그리하여 너희의 시간이 다시 이어지기를.
나는 조용히 그것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