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하는 일

수필통

by 이음


연말이 유독 길다.
말일에는 아들과 뮤지컬을 보고, 멋진 식당에서 밥을 먹을 예정이다. 점심과 저녁을 천천히 먹고 집으로 돌아와
제야의 종을 들으며 올해의 고단함을 풀어 내리라.

올해는 유난히 된해였다.
아이는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었고, 결국 자퇴를 했다.
중졸 검정고시를 준비해 합격했고,
곧바로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했다.
어느 하나 마음 놓고 기다릴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참는 것이었고,
가장 힘들어하는 일은 기다리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고등학교 지원을 준비하던 중, 안면마비가 재발했다.
나만 그랬을까.
우리 식구들 모두가 물 위를 걷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건넜을 것이다.

드디어 고등학교 1차 서류 발표가 났고,
아이는 합격했다.
나는 아들을 고등학교에 보내는 일이
이렇게까지 힘든 일일 줄 몰랐다.

중학교를 자퇴한 아이가
검정고시를 보고,
원내지망이 아닌 원외지망으로 외고를 지원했다. 모든 과정이 낯설고 버거웠다.

자격요건을 맞추고,
1차 서류를 넣고,
합격을 기다렸다.
내일부턴 2차 서류를 넣고 면접을 준비해야 한다.
만약 떨어지면 추가 지원을 해야 하는 구조.
그 모든 절차가 나에게는 커다란 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1차 합격 발표가 나고 나서야 알았다.
절차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이 모든 일이 내 자식의 일이어서 힘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복잡하다던 서류를 한 번에 준비했고,
어렵다던 자소서도 단번에 끝냈다.
결국 남은 건
기다리는 일,
마음으로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마음은 가만히 참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 같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큰일을 해낸다.
마음이 버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중2까지 참 수월하게 키웠다.
학교생활도, 친구 관계도 스스로 잘 해냈고
성적도 좋았다.
나갔다 하면 회장이 되었고,
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칭찬이 가득했다.
상장은 굳이 걸어둘 필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학교폭력을 반년을 당하며 내면이 부서지고 깨졌다.
밝고 적극적이던 아이는 위축되었고,
우울과 불안, 대인기피가 생겼다.
밖에 나갈 때면 친구들이 둘러싸 보호하듯 함께 다녔다.

친구를 위해 일진과 맞섰지만
결국 학교를 떠난 사람은
가해자도, 친구도 아닌 지키기 위해 싸운 자신이 되었다.

‘자신은 도망친 루저다’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그동안 쌓아왔던 자신의 성장일지를 지워갔다.

학교는 사건을 축소했고,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어른과 제도,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그런 아이가
학교 설명회에서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
눈은 다시 초롱초롱해졌고
등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기숙사와 학교를 둘러보며
가장 많은 질문을 던졌고,
유학까지 생각하며 자신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우리는 아주 적극적으로 입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두렵다.
거주지도 아닌 타도 시의 기숙학교,
24시간 촘촘히 짜인 공부 스케줄.
집에서는 하루 종일 집시처럼 쉬던 아이가
그 시스템을 견딜 수 있을지.

어제, 아이에게 물었다.

“기숙사 가기 부담스러워?”

오랜 침묵 끝에 아이가 말했다.

“… 가야만 해.”


‘가야만 해’라는 말은
하고 싶다는 다짐도,
괜찮다는 확신도 아니었다.
그 말속에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각오와
다시 무너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함께 들어 있었다.

나는 여전히 매 순간 갈등한다.
울며 전화가 오면 버티라고 해야 할지,
돌아오라고 해야 할지.
아이의 미래를 위해 인내를 말할 것인지
다시 쉬고 가도 된다고 말해야 할지.


아마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뒤에는 언제나 부모가 서 있을 거라는 것이라는 거다.
넘어지면 돌아올 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다시 걸을 힘을 얻는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배운다.

이제 2차 서류와 면접이 남았다.
이 모든 과정은 12월 안에 끝난다.
결과가 어떻든
우리는 그 끝에서 작은 피날레를 즐길 것이다.
뮤지컬을 보고,
따뜻한 밥을 먹고,
제야의 종을 들으며
서로의 한 해를 안아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불안 속에서도,
믿음을 놓지 않은 채로.
아이보다 한 발 뒤에서,
조금 느리게,
하지만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