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통
우리는 가끔 불을 끄고 음악을 듣는다.
게임 음악, 오케스트라, 피아노 협주곡 같은 것들.
우린 음악을 들으며 떠오르는 상상을 이야기하고
함께 춤을 춘다.
“이건 인디언들이 나오는 장면이 보여.”
“난 엄마 쿵푸허술의 마을이 보여.”
“거기서 뭐 하는데?”
“만두 들고 무술 춤을 추고 있어.”
“그래. 이 첫 부분, 관악기 소리만 나지?”
“응. 전통 악기라서 그래.
일본 전통 악기로 연주하니까 이런 장면이 보여.”
“엄마, 이 게임 이야기는 말이야…
주인공이 돌아왔을 때
마을은 이미 초토화됐고,
대장 할머니는 물고기 뱃속에 마을을 만들었대.”
“물고기 뱃속에?”
“응. 그래서 살아남은 군사들이
다 물고기 뱃속에서 살고 있었대.
풀죽처럼 위액을 뒤집어쓰고.”
“그래서 이 부분이 이렇게 웅장하구나.
엔딩은 좀 힘 빠진 느낌이구.”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가 말한다.
“방금 곤충 한 마리가 풀숲에서 날아왔어.”
“소녀를 등에 태웠지.”
“지금 풀섶을 지나 나무로 들어가고 있어.”
“다른 세상이 나오는 거야?”
“응. 완전 다른 세상.”
“사물들이 형태를 갖추지 않고,
서로가 공존하는 세상.”
“그럼 나무는 웜홀이야?”
“웜홀일 수도,
문일 수도,
아무튼 그 무언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다음 장면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우리는 세상이 만든 경계를 지키지 않는다.
지키지 않으면
경계는 더 이상 경계가 아니다.
우리는 한 손은 꼭 잡고
연주를 듣다가,
서로의 상상에 기대
선율 위를 날아다니다가,
다시 피아노 협주곡으로
심박수를 안정시킨다.
이유는 없다.
아이가 자기가 듣는 음악을
소개해 주고 싶은 날,
우리는 눈을 감고
서사로 스케치할 뿐이다.
그렇게 다시
보사노바 음악에 몸을 맡기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춤을 춘다.
조용히
빨간 모자를 쓴 누군가의 춤을 흉내 내며
양손은 간지나게 흔든다.
“럴프럴프 트럼프.”
그냥, 아무 말도 필요 없다.
우린 이미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