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통
“짚신도 짝이 있다”
이 말은 우리 아빠가 내 동생에게 가끔 하시던 말이다.
아마도 늦둥이인 동생의 결혼이 늦어지니 하셨던 말일 것이다.
동생은 이 말을 제법 스트레스로 받아들였다.
‘내가 짚신이냐’는 말로 들렸던 모양이다.
사실 내 동생은 정말 귀엽게 생겼다.
예쁘다기보다는 귀엽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얼굴이다.
얼굴형도 갸름하고 눈코입이 동글동글 오밀조밀하다.
인형 같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오늘 <무엇이든 물어보살>을 보다가
나는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의 뜻을
처음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부부는 연상연하의 사회복지사·간호사 커플이었다.
남편은 하루에 천 원씩,
무려 팔 년 동안 용돈을 모아 팔백만 원을 만들었다.
그 돈으로 아내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늘
“먹지도 못하는 건 사 오지 마”라고 말해왔고
남편은 그 말 때문에 고민이 되어 방송에 나왔다고 한다.
팔 년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천 원을 모으며 아내를 생각한 남편과
그 정성보다 더 값진 선물은 없다고 말하는 아내.
두 사람의 마음은
마치 서로를 위해 만들어진 퍼즐처럼
딱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결혼 10년 차가 넘었는데도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며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부부를 보는데
문득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아, 그래서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이 있었구나.
우리는 흔히
짝이 있다는 말을 외모나 조건으로 이해한다.
비슷한 학벌, 비슷한 집안, 비슷한 속도.
마치 계산기처럼 맞아떨어져야
‘짝’이 되는 줄 안다.
하지만 짚신은
처음부터 멋지려고 만들어진 신발이 아니다.
비 오는 날, 진흙길을 걷기 위해
서로의 헐거움을 감싸 안으며 엮인 것이다.
그 부부를 보며 나는 알게 되었다.
짝이란,
같이 걷기 편한 사람이라는 걸.
같이 늙어가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누군가는 천 원을 모으며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그 마음을 알아보는 사람으로 남는다.
그 둘이 만나는 일은
기적이라기보다
서로를 알아본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아빠의 말이 이제는 다르게 들린다.
재촉도, 비교도 아닌
“너도 언젠가는 너에게 맞는 길을 만날 거다”라는
조심스러운 위로처럼.
짚신도 짝이 있다.
그러니 아직 혼자라고 해서
틀린 인생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엮이는 중인지도 모른다.
서로의 발에 맞게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말이다.
당신의 발과
나란히 걷는 상상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