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통
우울증은 왜 몸도 아픈 걸까. 무기력하고 찌뿌둥한 아이가 찡이 났다. 나는 통증 때문에 밤을 새고, 날이 훤해서야 지쳐서 잠들었는데 점심때가 되니 아이가 깨웠다.
"엄마 좀 일어나."
"뭐라도 시켜줘."
"뭘 자꾸 시켜 먹어. 감자탕 먹어."
삶은 계란에 고구마에, 집에 먹을 게 천지여도 엄마가 새로 요리를 해서 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시켜 먹는 줄 아는 게 문제였다.
아이는 밥도 안 차려 주고 잠만 자는 엄마가 야속했을까. 찡이 제대로 났다. 누워 있어도 투닥투닥 감자탕을 데워 먹는 소리가 다 들렸다.
힘겹게 일어나 아이 침대로 가 보니 "나 뿔었어." 하고 볼이 퉁퉁 튀어나와 있었다.
흐흐,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도 밥 정도는 차려 먹을 줄 알아야 되기에 못 본 체하고 물을 떠서 내 방으로 들어왔다. 늦은 아침 혈압약과 정신과 약을 먹고 다시 누웠다.
우울증 환자의 대부분은 통증을 동반한다더니, 나는 너무 오래 아픈 것 같다. 또 우울증은 무기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재활이 쉽지 않다.
아이를 혼자 둔 지 한 시간쯤 됐을까. 다시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때 아이가 말했다.
"엄마…"
아이가 와서 안기더니 부비고 난리가 났다.
"엄마 자꾸 찡이 나고 온몸이 찌뿌둥하고 아파."
"그랬어? 흘려보내. 그런가 보다 하고. 감정에 매이지 말고 흘려보내. 지나갈 거야."
"엄마, 나 이불 갖고 올래. 같이 있자. 혼자 있으니 더 찡이 나."
"응. 가져와. 살이라도 부비면 좀 낫지."
아이는 이불을 가져왔다.
"애기야 케이크 시킬까?"
"오 좋지! 이렇게 다운될 때 당 충전 좋지."
우리는 생크림 케이크를 시켜 둘이서 회쳐 먹고 나서야 생기가 돌았다.
"엄마 나 씻을래."
"그래. 너 씻고 엄마도 샤워할게."
내 요즘 최대 고민은 건강이다. 다시 무에타이도 다니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은데 지금 체력이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예전처럼 글에도 집중하고 싶고, 투병이 아니라 라이프를 살고 싶은데 언제쯤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번 달 말이면 아이가 기숙사에 간다. 그러면 나는 집에서부터 일상생활이 가능할 만큼의 재활을 노력해 보려 한다.
나는 올해, 아주 조금이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겠지.
아마도 드라마처럼 벌떡은 아닐 것이다.
눈부신 햇살 아래 운동화를 묶고 “자, 시작!” 이런 장면은 아닐 게다.
대신,
혈압약을 먹고도 하루를 버텨낸 날.
샤워를 하고 나와 머리를 말린 날.
아이와 케이크를 시켜 웃은 날.
그런 날들이 모여 조용히 나를 세워줄 것이다.
아이도 나도 찡이 나는 날이 있다.
몸이 먼저 아프고, 마음이 뒤늦게 울고, 이유 없이 짜증이 솟는 날.
그럴 때 우리는 흘려보내자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같이 이불을 덮는다.
무기력증끼리 붙어 있으면 좀 낫다.
완치가 아니라 동행.
극복이 아니라 공존.
투병이 아니라, 조금 느린 생활.
이번 달 말, 아이가 기숙사로 가면 집은 조금 더 조용해진다.
감자탕을 데우는 소리도, 투닥거리는 숨소리도 줄어들겠지만,
그때 나는 비어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위에 나를 조금씩 올려보려 한다.
샤워 후 로션을 바르는 것부터.
집 앞을 한 바퀴 걷는 것부터.
무에타이 대신 스트레칭부터.
일어나는 건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케이크 한 판을 회쳐 먹고
“엄마 나 씻을래”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그걸로 이미 반쯤은 일어난 거다.
우울증이 몸을 아프게 하는 이유는
아마도 멈추라고, 잠깐 쉬라고,
다른 속도로 살아보라고 보내는 신호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여기 있다.
약을 먹고, 케이크를 먹고, 아이를 안고, 다시 눕는다.
그리고 또 하루를 산다.
그러니 괜찮다.
애기가 찡이 났고,
나도 찡이 났지만,
우리는 그래도 같이 있었다.
그걸로 오늘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