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출근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

by 이음

새벽 네 시, 첫 번째 출근이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찬 공기에 몸이 먼저 움찔했다. 휴대폰 알람이 세 번 울린 뒤에야 겨우 몸을 일으킨다. 손끝으로 머리맡의 시계를 더듬고 ‘4:01.’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가 시작된다.


밖은 아직 새카맣다. 길 위에 가로등만 서 있다. 어디선가 첫 버스가 멈춰 서고, 정류장 의자엔 나 같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검정 점퍼에 무표정한 얼굴들, 잠깐 눈빛이라도 마주쳐도 서로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대신 짧은 한숨이 새벽 공기 속을 스친다.


첫 번째 일터는 강남의 사무실 건물. 도시가 깨어나기 전, 나는 그곳을 깨우는 사람이다. 바닥을 닦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탕비실을 정리한다. 밤새 켜져 있던 컴퓨터 모니터의 잔광만 남아 있다. 그 불빛이 내 얼굴을 비춘다. 이곳에서 나는 존재하지만, 낮이 되면 완전히 사라진다.


걸레를 짜며 생각한다. 이곳의 사람들은 나를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바닥을 닦지 않으면 그들의 하루는 깔끔하게 시작되지 않는다. 내 이름은 없지만, 분명 누군가의 하루를 정리해 주는 사람이다. 그 사실이 나는 조금 위로가 된다.


해가 떠오를 무렵, 청소 도구를 정리하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회사원들이 막 출근하기 시작한다. 양복에 구두, 커피 한 잔을 든 손. 나는 그들 사이에서 청소 도구함을 끌고 나온다. 서로의 하루가 교차하지만, 눈인사는 없다. 그들의 하루는 지금 시작이고, 나의 하루는 이미 반쯤 흘렀다.


잠깐 눈을 붙이고 나면 두 번째 출근이다. 아침 아홉 시, 편의점 문을 연다. 하품을 하며 들어오는 손님들이 줄을 선다.


“이거 1+1 맞죠?”
“컵라면은 어디 있어요?”


눈을 비비며 계산대에 선다. 사장님은 오전 회의가 있다며 커피를 사주고 나갔다.


“요즘 젊은 친구들 대단하다. 쉬질 않아.”


나는 웃으며 말했다.


“쉬면 불안해서요.”


점심시간엔 잠깐의 평화가 온다. 손님이 뜸해지면 창가에 앉아 삼각김밥을 먹는다. 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들어오고, 편의점 유리문엔 ‘담배 판매 중’ 스티커가 반쯤 벗겨져 있다. 그걸 보며 괜히 나도 웃음이 난다. 지쳐도, 이상하게 버티게 된다. 아마 이 작은 일터가 나를 붙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후 세 시. 학교 끝난 학생들이 몰려온다. 튀김 냄새, 웃음소리, 쉴 새 없는 계산음. 아이들이 묻는다.


“사장님, 이건 할인돼요?”


나는 미소를 짓는다.


“응, 오늘은 특별세일이야.”


잠시지만, 그 말이 나 자신에게도 위로가 된다. ‘오늘은 조금 괜찮은 날이야.’
퇴근 후 집에 들러 씻고 나면 세 번째 출근이 기다린다. 저녁 여섯 시, 퀵배달이다. 헬멧을 쓰고 도심을 돈다. 노을이 지고, 불빛이 켜진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바람은 오토바이 헬멧 사이로 스며든다.


강남역, 여의도, 홍대, 신촌. 그 어디든 불빛이 많고, 불빛이 많을수록 배달 건수도 많다. 휴대폰 앱엔 ‘배달 완료’ 표시가 뜨고, 그 순간 알림음 하나가 피곤을 덮는다. ‘1건 완료.’ 작은 문장 하나가 내 하루를 지탱한다.


비가 오는 날엔 조금 더 힘들다. 브레이크가 미끄러지고, 옷은 금세 젖는다. 하지만 비가 오면 콜이 늘어난다. ‘비 오는 날은 돈 버는 날.’ 배달하는 사람들끼리 그런 농담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


밤 10시 반, 집에 도착한다. 신발을 벗고 나면 발바닥이 얼얼하다. 싱크대에 라면 물을 올리고, 휴대폰을 보며 내일 일정을 다시 확인한다. ‘새벽 4시 청소, 오전 9시 편의점, 저녁 6시 퀵배달.’ 이게 내 하루다. 이게 내 청춘의 스케줄이다.


가끔 궁금하다. 이렇게 일만 하다 보면 언젠가 내 삶도 누군가의 뉴스 한 줄처럼 스쳐 지나갈까. “쓰리잡 청년, 새벽에 사고로 사망.” 그 문장이 내 이름보다 먼저 남을까 봐, 가끔 두렵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일하지 않으면 월세를 낼 수 없고, 멈추면 다시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일이 나를 지치게 하지만, 또 일 덕분에 살아간다. 참 이상한 관계다.
하루 세 번 출근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저 평범하다. 살기 위해 나가는 것이다. 버티는 게 일이 되고, 일이 곧 나의 존재가 됐다.


가끔은 출근길에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지금, 가고 있잖아.” 비틀거리더라도, 피곤하더라도, 멈추지 않고 걷고 있다는 것. 그게 어쩌면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닐까.


새벽 네 시, 알람이 또 울린다. 불을 끄기 전에 다짐한다. 오늘도, 다시 출근합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