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사람들
사랑이 끝나면 사람도 함께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끝난 건 관계였고,
남은 건 마음이었다.
“아직도 그 사람 생각해?”
친구의 물음에 나는 웃었다.
“이젠 괜찮아.”
하지만 입 안에 맴도는 그 말은
끝내 진심이 되지 못했다.
이상하다.
사람이 떠났는데, 감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시간이 지나면 흐려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그 사람의 손짓, 말투,
심지어 그가 떠난 뒤의 공기마저도.
잊었다고 생각할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비 오는 날, 그가 내 우산을 들어주던 손.
지금은 그 손이 다른 사람의 어깨를 감싸고 있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없다.
그의 웃음이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길 바라는 건
어리석은 마음 때문일까.
이건 사랑이 아니라,
습관의 잔재일지도 모른다.
매일 그의 이름을 떠올리고,
그의 메시지를 기다리고,
그가 없는데도 그가 있을 것처럼 행동하는 습관.
“이젠 정말 끝났어.”
그렇게 다짐해도,
그의 이름 세 글자가 머릿속에서 빛처럼 번진다.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는
그가 앉아 있는 자리가 남아 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은 왜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을 가장 오래 기억할까.’
좋았던 기억보다
놓쳐버린 장면들이 자꾸 떠오른다.
아마도 그건 후회라는 이름의 중독일지도 모른다.
그때 그가 내게 말했다.
“넌 너무 기억력이 좋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이 맞았으니까.
이젠 조금씩 알 것 같다.
기억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는 걸.
그리움은 어느 순간
‘나를 붙잡는 족쇄’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그 사람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해 잊어야 하는 것이다.
밤마다 핸드폰 불빛 앞에서 손끝이 멈춘다.
‘잘 있지?’라는 단어를 쓰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완전히 지우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이별이니까.
오늘도 나는 그 사람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래도 너는 살아남았잖아.”
사랑은 끝나도 기억은 남는다.
하지만 언젠가, 그 기억 위로 새벽이 온다.
살아남는다는 건, 잊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