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사람들
관계는 중독된다.
우리는 누군가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타인의 시선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그래서 관계가 깨질까 두려워 오늘도 애써 괜찮은 척을 한다.
사람과 관계는 바늘과 실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사람에 중독된다는 건, 그 사람이 주는 감정에 중독된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가 나를 웃게 하고, 나를 인정해 줄 때 세상이 조금 덜 외로워진다.
그게 반복되면 어느새 그 사람 없이는 하루를 견디지 못하게 된다.
처음엔 단순한 호감이었다.
“좋아서 연락하는 거야.”
“괜찮아, 나도 보고 싶었어.”
그런 말들이 쌓이면서 마음의 중심이 옮겨간다.
그 사람의 기분에 따라 내 하루의 온도가 바뀌고, 그의 말 한마디가 내 자존감을 흔든다.
관계는 그렇게 스며든다.
무너질 기미 없이, 서서히, 부드럽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의 안부에 따라 숨을 쉬었다.
그가 나를 찾지 않는 날이면 나는 세상에서 잊힌 사람 같았다.
그날은 유난히 쌀쌀한 오후였다.
퇴근길 카페에 들러 따뜻한 라떼를 시켰는데, 창가 자리에 앉은 그는 여전히 그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낯선 여자와 마주 앉은 채, 내가 모르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뚝’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분노도, 질투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그동안 누구의 감정에 기대어 살았는지를 깨닫는 소리였다.
컵을 쥔 손이 떨렸다. 커피 향이 희미하게 식어가는데, 내 마음은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도 공기는 여전히 흐르고 있었고, 카페의 음악은 여전히 흘러나왔다.
모든 건 그대로였다.
변한 건 오직 나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휴대폰을 자주 확인하지 않았다.
그의 연락을 기다리는 대신 하루의 온도를 내 마음으로 조절하기로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중독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무의식 중에 SNS를 열고, 그의 사진을 찾아보다가 어느새 새벽 두 시를 맞이했다.
삭제 버튼을 눌렀다가 다시 취소했다.
그 흔적들이 사라지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두려웠다.
중독은 늘 익숙함의 옷을 입고 다가온다.
그래서 알아채기 어렵다.
나는 내 마음을 지키는 대신, 상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가 웃으면 세상이 괜찮고, 그가 차가우면 나도 얼어붙었다.
마치 인생의 리모컨을 남에게 넘겨준 듯한 기분.
관계의 중독은 사랑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이다.
그 사람을 향해 가는 길 위에서 나는 나를 점점 놓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알게 된다.
중독은 언제나 결핍에서 시작된다는 걸.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 인정받고 싶었던 어린 날의 기억들.
그게 채워지지 않아 남은 빈자리에 누군가를 넣어두고 스스로를 달래는 것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누군가에게 매달려 사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돌아와 숨을 고르고 싶다.
관계의 중독에서 벗어난다는 건, 결국 나를 회복하는 일이니까.
나는 오늘도 천천히 연습 중이다.
휴대폰을 멀리 두고 산책을 나가는 일, 혼자 밥을 먹으면서도 외롭지 않은 법을 배우는 일,
누군가의 ‘좋아요’ 없이도 나를 괜찮다고 믿는 일. 그게 내가 배운, 늦은 해독의 방법이다.
진짜 사랑은 서로를 묶는 게 아니라 서로가 자기 자리에서 숨 쉴 수 있게 두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