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오늘이 기적이었다

수필통

by 이음

일상의 소중함이 햇살처럼 스며드는 오후이다. 장애인분이 올린 글을 보고 일상에 후회와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나는 시각장애인의 삶을 생각해 보았다. 그에게 절대 주어지지 않는 하루가 생각났다. 아이의 아침을 차려주고 학교 가는 길을 배웅하는 일, 저녁 장을 보고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는 일,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SNS에서라도 볼 수 있을까 헤매어 찾게 되는 일등이 시각장애인으로 사는 삶에는 모두 해당되지 않았다.


그러자 우리와 너무 다른 일상에 먹먹함과 애잔함이 밀려왔다. 장애인으로 산다는 건 얼마나 버텨내기 힘든 일일까? 출발부터 불공평한 게 인생이라지만 그의 하루는 매일 견뎌야 할 고통의 리스트 같았다. 우리가 짜증내고 귀찮아하는 일들은 그들에게는 누리고 싶은 특권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밖을 나와 보니 봄비가 추적추적 떠난 뒤였다. 그 사이 공기가 부족한 지렁이는 숨을 쉬러 땅 위로 올라왔다. 흙의 창자라 할 만큼 생태계에 이로운 지렁이의 삶은 투박하고 위태롭기까지 했다. 땅에 습기가 마르기 전에 흙속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렁이가 아스팔트에서 헤매는 이유 중에 하나는 흙이 오염되어서라고 한다. 농약과 공해로 오염된 흙으로는 집을 짓고 살 수가 없어서 오염되지 않은 땅을 찾아 아스팔트에 헤매는 것이라고 한다. 지렁이는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어 촉감 하나로 길을 찾아가야 한다. 지렁이는 땅속에 살다가 땅 위로 올라오면 바로 생사의 위험에 노출된다. 어느 것 하나에게 해악이 되지 않지만 누릴 것 없는 쓸쓸한 삶인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지렁이가 우리 사회에 장애인들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장애인들은 선택해서 몸과 정신의 장애를 얻고 살아가는 게 아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 밖이라서 그들의 삶은 애끓고 슬프다. 우리가 매일 같이 다니는 출퇴근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 사진을 찍어 SNS 올리는 일, 좋아하는 책을 읽는 일들이 그들에게는 도전이고 고난이다.

그들은 문밖으로 나오면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경직되어야 한다. 매번 길을 물어봐야 하는 일, 물건을 살 때 물어보고 사야 하는 일, 먹고 싶은 음식을 해 먹을 수 없는 일,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일 등등.. 그들은 매 순간 눈치를 보고 피해를 줄까 염려해야 한다. 이들은 오히려 일반인보다 타인을 더 생각하고 온전히 자신의 삶에 집중하며 스스로 서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남에게 피해를 줄까 염려하고 망설인다.


그럼에도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평범한 하루는 그들에게는 다신 오지 않을 오늘이다. 몸이 멀쩡한 사람도 포기하고 낙오되는 사람이 많다. 몸의 불편과 사회의 시선을 감당하며 버텨내는 하루는 얼마나 힘든 일일까. 손목이 아파 파스를 붙이고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하면서 녹초가 되고 있었다. 나의 조금의 불편은 이렇게 크게 보이는데 그들의 불편은 얼마나 엄청난 것일까.


또 사랑할 수 있는데 사랑하지 않는 삶은 얼마나 퍽퍽하고 고루한 삶인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어서 보이지 않고 만지지 않았던 일상에 후회가 밀려들었다. 꽃과 나무도, 친구와 가족도, 사랑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더 사랑하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