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통
겨우내 그리웠던 봄바람이 살랑였다. 수선한 마음에 앞산에 올랐다. 가지마다 새순을 터트리는 모습을 보며 숲을 걸었다. 숲이 건네는 청량한 산소를 한 잔 마시 던 중 연보라 빛 얌전한 꽃님과 눈이 마주쳤다. 이름을 물어보니 '둥근 털 제비꽃'이라고 한다. 고개를 숙이고 낙엽 속에 숨어 밖을 엿보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응달진 곳에서도 고귀함을 잃지 않고 예쁜 몸단장을 마친 꽃님들이 반가워 낙엽을 살살 치워주었다. 고개를 든 꽃에게 햇빛이 들게 풀들을 밀어주었다.
꽃님이 말했다.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길 기다렸다고 했다. 낙엽 속에서 기다린 겨우내 그리웠다고' 제비꽃이 수줍게 말했다. 나도 꽃님을 보려고 900끼를 먹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제비꽃이 환하게 웃었다. 70여 종이 넘는 제비꽃 중 가장 먼저 일어나 기다렸다고 했다. 살랑살랑 떠드는 이야기를 들어주니 좋아했다. 우리는 다음을 약속하고 이내 헤어졌다. 제비꽃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숲의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길 바라며 봄 산을 내려오는 길에 생각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소통을 하고 있을까?
코로나로 언텍트 근무를 하고 있다. 그래서 온라인 소통이 주를 이룬다. 그중 카톡과 SNS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는 기다림의 시간과 거리가 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해외에 있던 우리나라에 있던 상관없다. 모든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만나고 소식을 전한다. 온라인으로는 오랫동안 연락 못한 친구들을 찾을 수도 있다. 친구 신청이 와서 보면 학교 친구나 사회생활에서 연락이 끊긴 정든 지인들이었다. 이들은 거리감이 없이 편했다. 어제 만난 듯 안부를 물어보고 이내 현재 시점으로 돌아온다.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 또는 어느 직장에 다니는지 등의 궁금한 걸 물어보고 다음을 기약한다. 소통의 방법과 종류가 많아져서 좋은 점이 많다.
온라인이 주는 장점은 빠른 공유이다. 각종 SNA로는 친구의 일상도 볼 수 있고, 관심사도 알 수 있다. 시간차를 두지 않고 올라온다. 각자의 관심사가 인터넷에 올라와서 고객들의 트렌드도 알기 쉽다. 소비성향을 알려면 고객들의 좋아하는 분야와 좋아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소비자들은 실시간으로 좋고 싫은 이유를 댓글로 단다. 기업은 중요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소비자에게서 들을 수 있다.. 이런 피드백들은 기업에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된다. 예를 들어 '어떤 브랜드에 라면 양이 작아졌다'든가? 아님 '수프 맛이 변해서 이제 타 브랜드 라면으로 옮겨가야겠다'는 글들이 그렇다. 또는 한동안 유행했던 '펌핑하면 귀가 쫑긋 올라와 귀여움으로 전국을 휘몰았던 토끼 귀달이 모자' 모자가 분리 세탁되지 않아 오염되면 소모성으로 변한다는 댓글들이 그렇다. 이런 문제점을 제조자나 기업이 반영하면 미래지향적 브랜드로 성장할 수도 있고 반영하지 못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소통은 사회에서도 식물에게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천리향을 키운다. 천리향은 반음지 식물이라 직사광선을 많이 받으면 잎이 타기도 한다. 또 물을 많이 주면 병들게 된다. 덜 주면 덜 줘서 마른다. 겨울철에 충분히 춥지 않으면 봄에 꽃이 만발하지 않는다, 향이 덜하고 꽃송이도 덜 달린다. 그렇다고 밖에 내놔도 되는 건 아니다. 지역별로 겨울의 온도차가 크기 때문에 식물도 토양의 습도와 온도를 가려서 자생한다. 매일 꽃과 잎을 본다. 목이 마른 지, 먼지 때문에 숨이 막힌 지, 세수가 하고 싶은지 바라보고 소통한다. 흙의 수분 양도 본다. 여름 흙과 겨울 흙이 다르다. 베란다 흙과 현과 흙의 습도도 다르다. 흙은 온도에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습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를 눈치채지 못하면 화분은 병들고 죽는다. 물만 잘 준다고 키울 수 있다면 밥만 주면 아이가 자란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살피고 바라보고 소통해야 식물도 아이도 자랄 수 있다.
온라인 소통은 때론 단점이 되기도 한다. 상대의 눈과 표정을 볼 수 없으므로 단문만 가지고 오해를 사기도 싶다. 소통 단계에 정보가 부족하기도 하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므로 과정 없이 결과만 단호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앞뒤 말이 없으니 전달력이 떨어진다. 이런 소통은 막힘으로 잎이 병들게 된다. 상대를 나라는 틀에 가두고 생각하고 말하면 좋은 관계도 끊기게 된다.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방법에 능통한 사람이 있고 불통인 사람도 있다. 소통에 답은 없다. 다만 흐름을 타야 한다. 맞거나, 맞지 않거나, 오해가 있거나. 있지 않거나이다.
우리는 늘 소통과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다. 소통의 반대는 불통이다. 더 큰 시야를 가져야 한다. 더 넓은 아량을 가져야 한다. 인간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단정 짓지 않아야만 소통이 가능해진다.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고 다름을 확인하는 소통이 온라인 세상에서도 있었으면 좋겠다.
소통은 지대한 관심이며 흐름이다. 막히고 멈추면 썩게 된다. 사람 간에도 식물에게도 마찬가지다. 사람 간의 소통을 잘 읽어내는 사람은 신의 주신 악기를 잘 사용하는 사람일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을 사랑하는 눈과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는 마음과 들리는 것을 경청하는 귀를 주셨다. 신의 사랑이 우리에게 전달될 때 우리는 흐르고 멈추지 않는다. 제비꽃은 기다렸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님을 보는 날을, 밝고 좋은 땅에 있지 않아도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