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일은 기적이다

수필통

by 이음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방법은 혼연일체가 필수였다. 나는 주인공처럼 슬프고 아팠다. 드라마 속에서 나는 조연이었고 가족이었다. 브라운관 안과 밖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초조하고 불안했다. 또 달콤하고 셀레 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 드라마에서는 조연들의 사랑이 더 아프고 애틋했다. 때론 더 멋지기도 했다.


잡지도 못하고 놓지도 못하는 사랑에 아파하는 걸 보면 내 가슴이 더 미어지고 내가 대신 잡아주고 싶은 사심 방청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일은 기적이라고 했다’ 기적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다.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조연들이 주인공을 보호해 주고 주인공이 많은 역경을 극복하고 나면, 그때서야 주인공에게 행복이 찾아온다. 주인공은 비로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떠나간다.


드라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사랑은 쟁취가 아니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를 ‘바라보는 사랑’을 전하는 것 같다. 보통의 드라마는 역경이 필수 코스이다. 역경을 이겨 내는 시간 속에서 사랑은 최고조가 된다. 그 순간을 거쳐 사랑의 끈을 두텁고 강하게 엮어 나갔다.


'현실 세계에서도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실 세계에서는 미혼자들에게는 순조로워야 결혼할 확률이 높다. 기혼자들은 위태로운 순간이 와도 대부분 이겨 내려 노력한다. 노력한다기보다는 미혼자보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미혼일 때보다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상황이 더 많다 보니 현실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이혼을 했건 안 했건 모든 기혼자들은 미혼자들 보다는 참아야만 했던 현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인 관계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또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필요가 없는데 사랑하나 만 믿고 상대의 삶을 온전히 짊어지는 길은 추천하고 싶은 코스가 아니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선택이고 책임이다. 먼저 갔다고 알고 모르고는 없다. 누가 맞고 틀리고도 없다.


가끔 연예 상담을 들으면 미혼자들의 고민은 결혼을 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하는 것 같다. 그러면 나는 그렇게 말해준다. 결혼할 상대가 있다기 보단 결혼할 시기에 나타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는 것 같아. 그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흘러갈 거라고 말해준다.


내가 결혼을 해보니 느끼는 게 있다. 그냥 모든 것이 결혼으로 흘러갔던 것 같다. 결혼할 시기가 있다는 말을 나는 믿게 되었다. 그냥 이 사람과 결혼하겠구나 느껴졌다. 마치 밥을 하려고 취사 예약을 한 것처럼 결혼은 흘러갔다.


결혼은 하고 안 하고 보다 중요한 게 있다. 나는 상대와 속도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인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싫고 좋음 사이에서 상대와의 간격을 좁힐 때와 넓힐 때를 아는 사람인가?


결혼 전에는 대부분 알기 힘들다. 그 알 수 없는 것들이 결혼을 하고 나면 체점한 시험지 돌려받듯이 하나씩 알게 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수용하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알 수 없지만 매 순간 한 템포 늦춰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섣불러도 안되고 너무 늦어도 안된다. 팽창과 수축에는 한계점이 있다. 어느 한쪽이 한계점에 이르도록 내 속도에만 충실하거나 내 입장에 충실하면 깨지고 부서질 수 있다.


춘향이와 이도령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옛날 옛적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우리는 서로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상대가 너무 속도가 빠르거나 내가 너무 느리면 서로가 힘들어진다.속도를 맞추는 쪽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먼저 가능한 쪽이 맞춰주는 게 중요하다.


차로 말해보자면 이런 식이다. 나는 스포츠카인데 상대는 경차라면 평균속도는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경차는 아무리 노력해도 스포츠카의 평균속도를 유지하기에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스포츠카는 속도를 낮춰 줄 수 있다. 경차는 최고 속도로 달려야 스포츠카의 평균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해보자 얼마간은 유지가 가능할 수 있겠지만 경차에는 무리가 오고 주행거리는 짧아질 수 밖에 없다. 반면 스포츠 카는 속도를 낮춰도 경차만큼의 무리가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숨겨져 있다. 스포츠카는 스포츠카인 이유가 있다. 달리지 않는 스포츠카의 삶은 행복할까? 속도를 낮추고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까? 가속으로 인한 차체의 생명단축은 없게지만 본래의 패턴을 벗어난 차는 녹슬고 병들수 있다.


속도를 낮추는 이유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속도를 낮추어도 드라이브 코스가 환상적이라든가, 어린아이나 노약자를 태우거나, 병자를 태워 마지막 여행을 시켜주는 것처럼 보람을 느낀다든가의 다른 만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스포츠카는 자신을 잃어가고 쇄약해 질 수 있다. 배려는 권리가 된지 오래다. 권리가 된 배려들은 사회에서도 결혼에서도 연인관계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스포츠카의 배려를 경차가 알고 마음을 전해야 한다. 그래야 다름사이에서 간극은 좁혀지고 속도는 유지될 수 있다. 나만 편안한 것인지? 상대도 편안한 것인지? 덕분에 편안하면 편안하다고 고맙다고 전달해 주면 좋겠다. 다름의 간격을 마음 말고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호흡도 상당히 중요하다. 숨은 생명의 필수조건이다. 둘이 만나 하나의 심장을 갖는 일은 두 명이 한 명으로 숨 쉬는 것과 같다. 두개의 심장이 하나의 심장으로 합쳐지면 심하게 박동하고 불타오른다. 문제는 산소다. 하나의 심장이 두개의 심장처럼 뛰고 숨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점차 늦춰야하고, 호흡을 나눠 쉬어야 한다. 자유는 절제되고 의무는 늘어난다. 나만 숨을 쉬면, 또는 상대의 호흡으로만 치우치면 곤란해진다. 한쪽으로만 호흡하면 한쪽이 지칠 수도 있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힘들다. 상대가 숨을 참을때 나는 어깨를 빌려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랑은 신뢰가 쌓이고 정이 쌓인다.


피치 못할 상황에서는 한쪽 날개로라도 날아 지켜주는 배우자를 곁에 둘 수 있다. 나는 이런 사랑이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일의 기적' 서로의 속도를 맞추는 사이, 다름의 간격을 좁히는 사이, 서로의 거리를 유지해 주는 사이, 상대를 위해 호흡을 참아주는 사이 이런 사이가 사랑의 기적이 아니면 뭐라는 말인가.


이런 기적이 유지 될려면 가슴에 사랑을 많이 축척해 두어야 한다. 살아가는 동안 사랑이란 이름표가 달린 많은 사랑을 해보길 권한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일, 구피를 돌보는 일, 화단을 가꾸는 일, 좋아하는 운동을 하거나 좋아하는 무엇이든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많은 사랑이 쌓이면 균열을 늦추고 상처를 치료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나만의 사랑은 쌓는 방법을 찾아 깨지고 부서지는 균열이 아니길 바란다. 그래서 어떤 순간에도 유연한 힘으로 지키고 버티길 바란다. 나로 시작한 사랑에서 타인으로 향하는 건강한 사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원래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 같다. 잡은 듯하면 없고, 놓은 듯하면 있다. 보이지 않고 확인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놓지도 못하고 잡지도 못한다’는 말. 그래서 사랑은 보이지 않는 기적인가 보다. 햇살 좋은 어느 날 기적을 태운 마차가 당신과 나의 집 앞에도 도착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