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통
가을 산을 걷다가 상수리나무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나를 잃지 않고도 하늘을 비추는 잎맥들이 신기했다. 잎을 멀리 보면 잎맥과 하늘이 같이 보이고, 잎을 가까이하면 잎맥이 없는 듯 하늘이 전부로 보였다. 제 할 일을 다한 나뭇잎은 떠날 채비를 하는 듯했다. 줄기마다 끌어올린 양분을 공급하고 광합성을 해서 씨앗을 뿌리고, 나무를 위해 또 떠나야 한다. 여름 잎은 그늘을 만들어 뿌리를 지키고 가을에는 잎을 떨궈 나무를 돕는다. 나를 비워 산과 하늘을 품은 뒤, 다시 흙이 되고 숲이 된다.
영화 '달마야 놀자'가 생각났다. '깨진 독에 물을 가득 채우거라.'라고 스님이 말씀하셨다. 조폭들은 구멍을 막고 물을 부었다. 조폭 두목은 연못에 항아리를 던져 스님의 문제를 해결했다. 밑 빠진 항아리를 연못에 던져 채운 것이다. 물속에 항아리를 던지면 깨진 형상에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형상에 집착하는 것은 올바른 마음이 아니다.' '안과 밖의 크기는 무의미하다.'라고 스님은 말씀하셨다.
우리는 삶에서 계속 무언가를 채우려고 노력하고 형상에 집착한다. 대기 중에 있는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명을 살리고 번식시킨다. 형체가 없어도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바람은 또 어떤가? 중국에서 밀려온 미세먼지는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기류는 미세먼지를 중국에서 우리나라까지 밀고 온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지만 물체를 데리고 올 수 있다. 보이는 것의 형상보다 넓고 미세한 곳까지 전달할 수 있다. 우리가 형체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갇혀 있는 생각인지 모른다. 형체 밖에 세상을 말하면 우주까지로 넓혀지지만, 형체 안에 세상을 말하면 커피머신에서, 전화기, 사람 등으로 범위는 한정되고 좁혀지기 마련이다.
별을 보는 친구가 있다. 별을 보는 사람들은 형체를 보는 것일까? 형체가 아닌 것을 보는 것일까? 당장 만져지지도 않는다. 보이는 것과 형체는 또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별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는 늘 우리의 영역 밖으로 관심이 향한다. 그래서 그것을 염원하고 알고 싶어 한다. 그런 곳에서 희망을 찾는다. 이런 일은 좋은 일이다. 형체 밖에 것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우리 안에 더 많은 풍요가 느껴지고 삶이 여유로워진다.
내 영역 안이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진짜 내가 보고 있는 현실의 깊이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내 삶 속에서도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지구를 사랑하는 일도,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당장 결과가 나오는 형체 중심적 일은 아니다. 그래서 더 소원하고 관심밖에 일이 되고 있다.
우리 삶 속에는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세상이 존재하고 있을까?
'솔로몬의 지혜에 나오는 아기와 두 엄마'에서도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엄마와, 아이의 생명을 더 소중히 하는 엄마, 솔로몬은 형체 밖의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진짜 엄마를 구별했다. 사랑은 늘 눈에 보이는 듯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을 열망하고 애태워 가지려 한다. 가지지 못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처럼 절망하고 후한을 만들기도 한다. 요즘 뉴스에서 데이트 폭력에 관한 사건이 많이 올라온다. 사랑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 짓지 못하는 것이 사랑일까? 집착일 것이다. 내 안에 가둬 놓는 일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식도 사랑하면 놓아주어야 한다. 고양이도 사랑하면 너무 만지면 안 된다. 하물며 사람 간의 사랑은 얼마나 제약도 많고 기다림과 이해가 많아야 가능할 것인가. 단시간에 상대를 나에게 맞추려고 하는 일들은 사랑이 아니다. 병이다.
나를 모르고 상대를 사랑하기는 어렵다. 나를 모르며 나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짜 나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있을까? 우주의 별을 관찰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진정한 나는 우주의 별처럼 보이는 것과 실체는 다르기 때문이다. 나를 만나보지 않고 나를 알지 못하면서 상대를 받아들이는 가슴은 얼마나 좁은가?
나는 상수리나무 잎맥 사이로 하늘을 품는 모습을 보고 느낀다. '무엇을 담 든, 무엇을 바라보든 그것은 나의 크기에 달려 있구나'라는 것을. 사람이 품어야 할 것이 하늘뿐일까? 사람을 품는 일은 그래서 어렵다. 나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일상을 품으려 노력한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삶 속에서 일어난다. 나의 경계 안에서 바라보면 그곳은 밖이었고 한계였다. 경계를 치면 그늘이 드리워지고, 그늘은 한계를 짓는 선이 된다. 사람의 선은 경계를 짓지만, 숲의 선은 사이를 비췄다. 선을 넘어 보면 숲과 하늘이 비치듯, 나의 소심한 항아리에도 하늘이 담기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