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보다 중요한 건 사이다

수필통

by 이음


요즘은 ‘결이 좋다, 결이 맞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 같다.

겉만 보고 그 사람이 나와 결이 맞는 것 같다고 다가와서 자신의 결을 보여 주 듯 친밀도를 나타낸다.

보여주는 만큼만 알아가며, 보이는 만큼만 그를 안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일까? 일부 사람들은 선급함으로 좋은 관계를 놓치는 것 같다. 나와 결이 맞는다는 말이 나는 위험하게 들린다. 나와 같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상대를 가두어 버린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성향을 나타내면 금세 반색을 하며 틀리다는 표정으로 변한다. 이렇게 이어진 관계는 불편하고 서로의 이해를 단절시킨다. 결이 같다는 말을 하므로 그들은 편을 가르고 나와 다름을 배제하는 관계로 변질된다.


수학을 배울 때도 아이를 키울 때도 배워가며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곱셈과 나눗셈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그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수업 시간이 지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이해 못 할 일이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8살 인생 최고의 위기였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배꼽이 떨어질 듯 달랑거릴 때 불이 나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배꼽이 떨어졌는데 모르고 있다가 염증이 났다는 등, 배꼽 떨어진 부분을 소독하고 거즈를 붙여 줘야 아기가 후벼 파지 않아서 염증이 안 생긴다는 등의 여러 지식인이 많았다. 소아과에 가면 아이를 안고 어쩔 줄 몰라 둥가 둥가를 하며 쩔쩔매는 엄마를 보면 엄마가 더 아픈 표정이다. 나를 보는 것 같아 속으로 웃음이 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 알게 될 것을 그때는 아기에게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회계를 지식으로 배우고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모든 업무가 처음이고 공포의 연속이었다.

차변과 대변은 아는데 영수증 없는 금액은 어떻게 해야 하고 세법과 회계를 벗어나는 업무들의 연속 속에서 난항을 겪고 일주일씩 밤을 새우기가 일수였다. 내가 팀장이 되고 차장이 되며 부서원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신입 시절 나를 보는 것 같아 측은하고 이해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이해력이 좋아 찰떡같이 알아듣고 습득한다. 어떤 사람은 여러 번 말을 해줘도 본인이 고민해야 하는 시간을 충분히 거쳐야만 이해한다. 또 어떤 사람은 아예 이해를 포기하고 암기만 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끝내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잣대를 같게 들이 되고 정의하면 위험하다. 사람별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시간은 각기 다르다. 서로 지나온 과거가 다르고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 안의 여러 모습 중 상대마다 상황마다 드러나는 성향도 다르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의 관계를 우리는 얼마 나의 시간을 들여서 판단하는 것일까?

인간은 변수의 진화형이다. 같은 책도 읽을 때마다 해석이 다르듯 사람을 알아가는 것도 다른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이 온다는 건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오는 것"이라고 정현종 선생이 말했다.

모든 일에는 시간이라는 거리를 걸어야 이해라는 종점에 도착할 수가 있다. 당신과 내가 만나기에 필요한 시간을 걸을 수 있도록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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