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와 별이와의 로맨스

수필통

by 이음


고양이에게는 기대가 없다.

불러도 귀찮으면 못 들은 척 귀만 쫑긋한다.

자신이 필요할 때만 애교를 부리고 발을 줘도 밉지가 않다.

고양이와는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별이가 봉지에 들어가 놀다 봉지 손잡이가 목에 걸렸다.

귀여운 모습에 남편과 함께 핸드폰을 찾아 찍기 바빴다.

봉지가 순순히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아 부모가 개입해야 했다.

봉지가 별이에게 매달렸다.

분명 처음에는 별이가 먼저 봉지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둘은 신나게 놀았지만 이별은 쉽지 않았다.

지루해진 별이는 이별을 얘기했지만 봉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봉지가 별이 목에 매달리자 별이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싫은 표정이었다.

평소에 별이는 봉지를 좋아하고 지퍼백을 지극정성 핥으며 아낀다.

케이지보다는 택배 박스를 좋아하고 사료도 브랜드, 성분별로 안 먹는 게 많다.

응가하고 모래를 덮고 나온 발을 이쁘다고 좋아하고,

응가 묻은 엉덩이로 소파에 안는 걸 허락하는 이상한 동거이다.


남편에게 물어봤다.

"내가 별이 같이 해도 같이 살 거야? "

남편은 작은 눈을 크게 뜨면 미쳤냐는 말을 눈으로 했다.

가끔 거실에 정체 모를 갈색 얼룩이 묻어 있다.

보면 다행인데 못 보면 로봇 청소기가 온 집을 돌고 돌아 그 갈색 흔적을 바르고 다닌다.

나 역시도 남편이 그러면 같은 눈빛을 보낼 것 같았다.

하지만 별이는 용서가 된다.

식탁은 별이가 스크레쳐로 써서 나무 가시가 아이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치웠다.

카펫은 별이가 뜯어서 다 걷었다.

벽지도 다 긁어 나서 성치가 않다.

스크레쳐를 통나무까지 종류별로 놓아봤지만 다 싫다고 했다.

별이는 꼭 영역 표시를 하고 싶은 것이고, 장소여야만 했다.


그래도 별이는 착한 면이 있다.

어항 4개를 발 한 번씩만 담가보고 다시는 건들지도 않는다.

화분들은 가끔 씹어도 쏟아 버리지는 않는다.

별이는 자기만 키우기를 고집하지 않고 집사의 취미생활도 인정해 주는 아량 넓은 반려묘였다.

덕분에 남편은 어항을 하고 나는 화분을 가꾼다.


아침에 일어나 어항 밥을 먼저 주면 별이는 귀엽게 앞발로 다리를 툭툭 치면 자기가 서열 위라고 ‘앙앙’하고 울부짖는다.

질투하는 모습이 귀여워 부러 어항에 집중하는 척하면 앞발을 모으고 스핑크스 자세로 노려본다.

도도한 고양이 집사는 늘 사랑에 목말라 있다.

나는 부러 별이의 의사와 반대로 행동할 때도 많다.

집사도 사랑받고 싶다.

지루한 일상에 별이가 있어 아이 한 명 더 키우듯 행복하다.


반려동물이 주는 정신적 치유가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생명을 사랑한다.

화분, 물고기, 햄스터, 병아리, 까치까지 내 손길이 필요한 모든 것을 사랑하고 보살폈다.

며칠 전 아이가 놀이터에 놀러 갔다가 집에 있는 아이스 박스를

가지고 나가서 모래를 퍼 담고 민들레를 옮겨 심어 들고 왔다.

“엄마 민들레가 놀이터에서 파헤쳐져 죽어 가 길래 데리고 왔어”

“우리 집에서는 화분이 다 잘 살잖아. 키워서 홀씨 날려 보내주자. 응?”

얼른 허락해 줬더니 민들레에 물을 주고 이내 살려 냈다.

다음날 고개를 바짝 들고 꽃잎을 피우자 아이도 꽃잎처럼 활짝 웃었다.


우리는 생명이 모일 때 에너지가 상승한다.

그것이 작은 들꽃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생명을 가까이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로운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다.

나무와 인간은 공생 관계이다.

나무는 광합성을 하기 위해 산소를 배출하며

인간은 호흡하기 위해 그 산소를 마신다.

숲은 숲의 역할을 하고 우린 그 숲을 가꾼다.

생명의 존엄성이 인간에게만 국한되면 안 되는 이유다.


반려동물도 공생관계이다.

고양이는 집사가 있어 생존 가능하고, 집사는 고양이가 있어 심심의 안정과 치유를 얻는다.

또 반려동물에게는 기대가 없다.

기대가 없으니 바람 또한 없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다르다.

상식이라는 선을 정해 놓고 같아야 한다고 가정한다.

이 같음은 나의 관점이다.

나의 생각으로 타인을 정의할 때 관계는 끝나게 된다.

관념적 소통은 불통에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불통은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사람을 지치게 한다.

스트레스는 성인병에 발원 요인이기도 하다.

꽃을 보고 좋아하는 건 우리의 몫이지만

그 좋음이 단지 기분이 좋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꽃을 보고 환기되는 기분은 스트레스 해소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지심리학으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있다고 한다.

일과 상관없는, 내 분야와 다른 사람의 친구를 만나야 한다.

일과 상관없는 무의미한 이야기로 수다를 떨어야 한다.

이때 우리 안에 쌓여가던 스트레스들이 해소된다고 한다.


이 말을 해석하면 나는 이렇게 들렸다.

기대가 없는 것,

잘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생각을 옮겨놔야 휴식이 된다고 느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다.


기대가 없는 반려 동물이나,

다른 생명체로 삶의 중심이 약간 옮겨지는 것이 건강의 비법인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힐링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우울증이 있거나 독거노인들의 경우 반려동물을 키우기를 권하고 있다.

조건 없는 사랑과 관심을 받을 때 우리는 치유되고 회복된다.

우리의 일상은 늘 조건적이어서, 기대가 있고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나의 성과나 능력과 관계없는 곳에서 사랑과 지지를 받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야 할 의미와 존재를 깨우쳐 준다.

존재를 확인하는 인간은 살고 싶어 진다.

살고 싶은 인간은 희망을 찾고 열정을 갖는다.

우리의 일상에도 존재만으로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