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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리뷰런치

언론 혐오 사회_정상근

후기

by 이음

사람마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저는 비빔밥은 소화가 잘 되는데 피자나 햄버거는 거북해집니다. 당긴다고 열심히 먹으면 고생하게 됩니다. 또 저는 철분 영양제만 먹으면 잘 체하는데요. 사람마다 속이 편한 음식이 있고, 불편한 음식이 있는 듯합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가치관가 같으면 동향되고 다르면 거부감이 듭니다. 피로하고 지칩니다.

저는 배꼽사에 포털을 유독 좋아합니다. 하지만 뉴스는 빼고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즘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면 이게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간혹 제목이라도 보게 되면 안 본 눈을 사고 싶습니다.


문제는 문제가 발생한 구체적 사실은 알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피로감을 주는 기사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 ‘언론 혐오 사회’ 정상근 기자님께서 시원하게 밝혀 주신 책이 있어 읽게 되었습니다.


초단위로 변하는 세상 속에서 진실 여부를 파악하고 기사를 쓰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시간을 들여 쓴다고 해도 기사는 인기를 끌기 어렵습니다.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제목은 눈에 빨리 띄기 때문입니다. 진실보다는 이슈에 길들여진 사람들과, 이슈를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하기 바쁜 사람들의 속사정이 다릅니다.


가짜 뉴스에 대한 법적 제지도 없습니다. 일단 이슈화 해서 클릭수만 높이고 수익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문을 사서 보지 않는 세상에서 언론사의 수익은 클릭수와 광고뿐입니다. 조직은 살아야 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권력과 자본의 축으로 기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언론은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국민이라고 보지 않고, 정치인이나 관료 혹은 재벌이라고 생각한다. 신문 대신 포털에서 공짜 뉴스를 보고 있는 지금 이 시대, 이들에게 붙어 있는 편이 금전적으로도 훨씬 이득이다."[본문 24p]


"부동산 문제에 관한 기사를 쓴다고 예를 들어보자. 국토부에 출입하는 기자가 국토부의 자료를 받아서, 국토부 공무원들과 대화하며 기사를 만들어낸 그렇게 비슷한 시간, 비슷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수천 개의 비슷한 기사들이 동시에 풀리고, 포털은 그중 하나를 골라 메인화면에 건다. 그러면 그것이 이슈가 된다. 사람들이 댓글을 달고 가장 많이 읽은 기사들은 다시 청와대, 국회, 국토부에 스크랩되어 보고된다. 이것은 '여론'이라 불리고 위정자들은 이 여론을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법안을 만들어낸다." <본문 25P>


"종이 신문의 쇠락으로 언론은 초 단위 호흡으로 기사를 써야 하는 '온라인 매체'가 됐다. 클릭을 모으기 위해 기자들은 컨베이어 벨트에 앉아 똑같은 기사를 써댄다." [본문 27P]



마치 영화 내부자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언론은 이러이러한 기사를 써줄 테니 너는 이러이러한 액션을 취하라는 식이죠. 영화가 언론보다 훨씬 더 현실 같게 느껴지지만 영화는 다 현실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여론을 바탕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법안을 추진한다는데 있습니다. 여론은 진짜가 아닙니다. 그들이 쓰고 싶은 내용일 뿐. 그들이 쓰고 싶은 내용은 그 위에 권력이 이권 조작으로 만든 기사이기 때문입니다. 민심이 반영되지 않는 정치가 나오는 이유는 여론이 조성되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기자들의 주요 임무는 권력에 대한 감시고, 그 권력은 대체로 '행정부-입법부-사법부'에 있다. 민주주의 국가는 3부가 나뉘어 상호 간 감시와 견제를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재 정치를 막는다. 그리고 언론은 대대로 '4부'로 불렸다. 이 3부 권력을 견제한다는 의미다."[본문 35P]



오늘 아는 분이 페이스북에 "기자도 권력"이라는 글을 남기셨습니다. 후배분이 정치부 기자가 되고 변했다고 합니다. 대화를 하다 보니 말이 짧아지고 정치인들에게도 나이 상관없이 그런다는 말입니다. 기사를 써야 할 기자가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로 평론을 하고 어떤 정치인은 자기가 혼내줘야겠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고 들으셨나 봅니다. 출입국 기자가 되고 나면 이렇게 변해도 되는 것인지 더는 묵인하기 어렵겠다는 글이셨습니다.


국민이 권력을 감시할 수 없어 언론을 만들었습니다. 언론은 지금 위임받은 권력을 잘 행사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스스로 권력이 되어 국민 위에 서 있을까요?



문화일보 광고 담당자 ▶ 삼성전자 차장 장충기 씨에게 보낸 문자[본문 64P]



서울경제 간부 출신으로 한 대학의 초빙교수 재직 중 ▶ 삼성전자 차장 장충기 씨에게 보낸 문자[본문 65P]



조직의 직무로 이런 문자를 보내는 것도 불편하고 염치없는데 퇴사한 사람까지 라인을 타기 위해 이런 부탁을 하려면 재직 중에 얼마나 많은 조아림이 있어야 가능한 것일까요? 퇴직 후에도 전 직장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이런 거래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불편한 진실들이 밖으로 새어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암암리에 많은 사례들이 얽히고설키었을까요.


화분이 병이 들면 겉만 보고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벌레가 먹었다든가, 과습이라든가, 화분이 작다든가, 흙이 병충해로 죽었다든가.. 알 수 없는 많은 속사정들이 있듯 잘못된 것은 들춰봐야 알 수 있습니다.


흔히 그런 말이 있죠. 명품 매장 직원들은 본인이 명품인 줄 안다는 비아냥 거림이요. 손님이 오면 살 고객인지 안 살 고객인지에 따라 대우가 확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출입국 기자들의 행태도 놀라웠습니다. 명품 매장 직원들처럼 출입국 기자들은 스스로 권력이 되고 스스로 정치를 하려고 한다고 합니다.


언론이 이렇게 된 기반이나 이유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은 많은 의구심을 해결해줬습니다.


포털사이트로 인한 언론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클릭수를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도약과 희망으로 '독립언론'의 출범 '뉴스타파'의 사례들까지 신랄한 현실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제 언론 혐오 사회는 언론 경쟁사회로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과 시민의 소리를 경쟁해서 쏟아내는 언론사들이 많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미 성공한 사례도 있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과 언론이 좀 더 가까워져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든지 좋은 기사를 돈 내고 볼 수 있는 시민들이 많다는 것을 언론사도 경험해야 하고요. 시민들도 언론들이 충분히 좋은 기사와 진정성으로 다가올 수 있는 기자분들이 있다는 걸 믿고 후원하면 좋겠습니다.


책을 덮으며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자님은 괜찮으실까?'입니다. 흔히 암흑세계를 파헤치고자 하면 주변에서 제지하는 세력들이 많잖아요. 제삼자가 쓴 것이 아니라 현재 몸 담고 있는 사람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설명들이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셨을까요.


나와 우리의 얘기를, 함께한 그들의 얘기가 될 수 있는 사실들을, 적어내기 위해 많이 아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부터 시작하는 민주주의가 가족을 바꿉니다. 가족이 변해야 조직이 변하고 조직이 변해야 사회가 변합니다. 저자님의 용기에 한 팔 얻어 나부터 시작하는 민주주의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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