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2.11.15/화) ​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소주 한잔하고 싶다>


나는 ‘소주 각 1병씩’ 이란 말이 참 부럽다.

소주와 나는 상극이다. 처음 소주를 먹어본 날이 마지막 날이 되었다.

첫 회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때는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주는 게 관례였다. 나는 술을 못 마신다고 말했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죽을 각오로 원샷을 하고, 바로 분수처럼 다시 뿜어져 나왔다.


우리는 뒤쪽으로 다시 상을 차려야 했다. 그날 이후 선배들은 회식자리에서 나를 제외시켰다. 어쩌다 참석하게 되어도 밥만 먹을 수 있는 특혜가 주어졌다. 그때는 술을 안 먹어서 좋았는데..

이제는 가끔 마시고 싶어 진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 한잔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포장마차에 가서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말해보고 싶다.


그런 날이 있다.

말하고 싶지 않은 날.

어딘가에 내려놓고 싶은데 받는 이도 무거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는 날.

그런 날...


빈 의자, 빈 소주잔에 모두 털어놓고 오고 싶은 날.

묘한 취기에 흘리는 지도 모르게 줄줄 흘리고 싶다.

집에 도착할 때는 모두 털고 가뿐하게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뭉근한 날도, 우물쭈물한 날도, 고독한 날도 그런 생각이 든다.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

나의 외로움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


비가 와도 좋고, 눈이 와도 좋은 어느 날.

소주 한잔 달게 하고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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