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너를 좋아했나 보지~

소꿉 소꿉

by 이음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나는 내성적이고 말이

없었다. 학교가 낯설고 많이 어색했다. 짝꿍은 남자 아이고 짓궂었다. 날카로운 인상에 쪽 째진 눈매며 앙칼진 목소리도 불편했다. 당시 엄마는 아동복 가게를 하셨다. 긴 파마머리에 원피스를 입히고 흰 타이즈에 구두를 신겨 학교를 보냈다. 엄마의 인형 놀이는 나에게는 고통이었다. 원피스에 타이즈는 깡 마른 나에게는 추위를 견디기 힘들고 불편한 옷이었다.


짝꿍은 책상에 선을 그어 놓고 책이 조금만 넘어가도 내 학용품을 뺏아 갔다. 작은 언니는 예쁜 수첩에 연필들을 사서 나에게 챙겨주었다. 나는 집에 갈 때마다 다 빼앗기고 빈 필통으로 돌아갔다. 짝꿍은 누나들이 많았다. 사내아이가 나보다 더 계집애 같았다. 나는 양볼을 꼬집히고 문구를 빼앗기고 울며 집에 가는 날이 많았다. 정말이지 짝이 너무 싫었다. 2학년부터는 같은 반이 되지 않아 너무 행복했다.


성인이 되어 친구를 만나러 갔더니 1학년 때 짝과 부 반장이 나와 있었다. 친구가 연락이 돼서 서로 서울에 사니 한번 보자고 약속을 잡았다고 한다. 16년 만에 만난 아이들은 어릴 때 얼굴이 남아 있었다. 금방 누군지 알아보았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색함은 잠시뿐이었다. 그 간의 생활을 물어보고 금세 편안해졌다. 그 짝꿍은 재수를 해서 아직 대학생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친구의 학교 잔디밭에 맥주를 사 가지고 가서 얘기를 하다 헤어졌다. 남자 친구 둘에 여자 둘이니 남자 친구들이 데려다준다고 했다. 여자 친구와 부반장은 약간 썸을 타는지 둘이 같이 간다고 했다. 짝꿍과 나는 자연스레 같이 가게 되었다. 이때다 싶어 집에 가는 길에 그 친구에게 물어봤다.


“너 그때 나 왜 그렇게 괴롭혔어? “

“맨날 꼬집고 깨물고 학용품 뺏고 ,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1학년 때 힘들었는지 알아? “

“내가 그랬다고?”

“음,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널 좋아했나 보지!”

“............”

갑자기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친구는 싱글싱글 웃으며 쳐다보고 말하는데

나 혼자 멀뚱멀뚱 시선을 피하고 걸었다.

8살에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게 가능한 걸까?

속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딱히 다음 할 말도 없었다. 우리는 그 후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명절이었다. 친구도 나도 시골집에 내려와 있었다. 명절 전날은 친구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시내 호프 집에서 보자고 했다. 군대를 간다고 말하며 술을 많이 마시길래 뭐라고 위로를 해야 좋을지 몰랐다. 술은 그 친구가 마셨는데 나를 바래다준다고 해서 얼떨결에 시내서 집까지 걸어오게 되었다.


그 친구가 말했다.

“우리 서울에서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 나 그때 여자 친구랑 여러 번 헤어지고 만나고 반복하고 있었다고 했잖아”

“그때 헤어질 때 너 만난 때였어”

“16년 만에 만났는데도 나 너한테 흔들리더라”

“첫사랑이라 그런가 봐”

술기운에 하는 말이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리고 친구가 말했다.

“나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 수 있어?”

“음.. 들어보고”

“군대 가서 전화할게 전화받아 주라”

“휴가 나오면 전화할게 만나 주라”

군대 가면 잊히고 휴가 나와도 만나주지 않는다고 외로워진다며 불안해했다.

그래서 그 정도야 해줄 수 있지 하고 가볍게 오케이 했다. 그리고 친구는 통신병으로 입대했다.


첫 휴가 때는 반갑게 만났다. 두 번째 휴가는 텀이 짧았지만 또 반갑게 만났다. 세 번째 휴가를 또 나왔는데 일반인일 때보다 자주 보는 느낌이었다. 머리만 짧아졌지 이래 자주 나오나 싶었다. 통신병의 휴가를 모르고 오케이 한 걸 그때마다 후회했다. 그다음부터는 전화만 와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만사 제쳐두고 일정 맞춰 만나기에는 너무 자주 나왔다. 할 일 다 하고 나오는 휴가라는데 슬슬 반가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갇힌 자는 자주 나와도 오랜만일 것이고 갇히지 않은 자는 일 년에 한 번 만나도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 차이였다. 한두 번은 전에 만난 친구들도 나왔지만 세 번째부터는 전화를 아예 안 받는다고 했다. 대학 동기들 만나라니 자기가 재수생이라 애들이 어려서 안 맞는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녀석의 전화를 두려워했다. 제발 천천히 휴가 나오길 바랐다. 그러다 친구가 제대했다. 군대 가 있는 동안 다들 연락을 안 받아 서운했는데 네가 연락을 받아줘서 고마웠다고 거하게 밥을 샀다.


그리곤 그 친구는 복학을 했다. 잘 지내나 싶더니 갑자기 연락이 왔다. 아버님 사업이 망했다고 했다. 어머님이 위중하셔서 휴학하고 내려간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는 연락이 끊겼다. 그 친구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다. 인연이 참 요사롭다. 닿아다가 끊긴다. 다시 닿고 또 끊긴다. 오래도록 편히 볼 수 있는 30년 지기 친구를 두는 게 쉽지 않다. 시간과 우정이 비례하지는 않지만 시간의 깊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잃는 게 슬프다. 그래서 시절 인연이라고 하는 걸까? 언제 어디서 우연이 닿아 만날 인연일지 모르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사람을 보내는 게 더 어렵고 아프다. 그래서 때론 사람을 마음에 들이기가 무섭다. 오래도록 함께 갈 인연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지 모른다. 어디선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 통신병 친구야. 다시 또 문득 나타나 밥 사달라고 웃으면 좋겠다. 별 일 없기를. 지금도 잘 버티기를 바란다.

30년 지기 친구가.

30년 지기 친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