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음 May 26. 2021

포슬포슬 감자가 날 꼬셨다

수달 가족의 해풍소

요즘은 운전연습과 만보 걷기를 하고 있다.

남편 없이는 동네를 못 벗어나는 내가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코로나로 활동이 줄어 체력도 저질 체력이 되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매일 새로운 곳을 운전해 보고 낯선 길을 많이 걸으려 노력한다.


오늘도 운전 연습 삼아 농협 식자재 마트를 갔다.

예전에는 모두 남편 쉬는 날에 맞춰 움직였지만 이제는 홀로서기 연습 중이다.

젖은 진흙이 묻어 있는 감자 자판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분 많은 감자로 보여 기분이 좋았다.

수분이 묻어 있는데도 껍질이 터질 듯 벗겨져 있었다.

‘나 엄청 포슬 거리는 분감자예요’라고 나를 유혹하는 듯했다.

100g이 얼만큼인지 몰라 대충 한 봉지를 담아 저울에 담아보니 이래도 되나 싶게 저렴했다.

질 좋은 식자재만큼 행복한 쇼핑도 없었다.


감자전도 하고 포슬포슬하게 삶아도 먹여야지 싶어 한 봉지 더 사기로 했다.

신이 나서 한 봉지를 더 담으려 하는데 옆에 할머니가 오셔서 같이 집게를 들었다.

할머니는 감자에 붙은 진흙을 때느라 감자를 마구 두들겼다.

두드리다 맘에 안 들면 다른 감자를 골라 다시 두드렸다.


나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껍질이 터져 나 포슬 거려요’ 하고 날 유혹했던 아이들이 다 이렇게 맞아서 벗겨진 아이들인가?

할머니 한번 감자 한번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ㅎㅎ 그런 건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그람으로 계산할걸 생각하고 진흙을 떼어내는 내공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감자가 흙이 묻어 있어 신선해 보이고 껍질이 터져 분이 많아 보이는 게 다였는데 역시 연륜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할머니는 감자를 때리는 건지 진흙을 떼는 건지 모르게 감자와 씨름을 할 때 나는 웃으며 두 봉지를 사서 나왔다.


저녁에는 앞산으로 산책을 나갔다.

만보를 걷고 산을 내려오던 중 산 앞 도로에 스키드 마크가 짙게 그어 있었다

어제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구나...

안타까운 생각이 들던 찰나에 스키드 마크와 혈흔이 함께 보였다.

생각보다 큰 사고였던 것 같다.

도로에서 인도까지 타고 올라온 흔적이 짙었다.


동생과 이어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어 현재 상황을 말해주었다.

앞만 보고 지나가셨던 할머니께서 내 통화 내용을 듣고 다시 되돌아오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심각하게 움직이지 않으시고는 서 계시는 걸 보고 나는 다시 걸어왔다.

통화 내용을 못 들었으면 좋았을걸 내가 떠들어서는 한 사람이 더 알게 되었다.

내 입이 방정이다.

하룻밤 사이에 내가 매일 산책하는 곳에서 누군가가 다쳤다니 맘이 안 좋았다.

혈흔이라도 지워주지~

어르신들이 많이 오가는 길인데 많이들 놀라시겠다.


하루에도 참 많은 일들이 생긴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보내는데도 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 집에 돌아간다.

때로는 못 돌아가는 사람들도 생긴다.

매일을 살 것처럼 느끼지만 오늘 여기에 있는 것이 실은 기적이다.

얼마나 살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사고 현장을 보면 맘이 더 안 좋고 가족이

무사히 귀가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새삼 느낀다.

가족들이 현관문 누르며 들어오는 소리가 가장 큰 선물이고 축복이다.


분이 풀풀 나는 감자를 쪄서 저녁상에 올려놨다.

김자가 뜨거워 들었다 놨다 하며 손을 후후 부는 가족을 보면 난 또 웃는다.

부디 이 기적이 매일매일 이어지길~

오늘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코와 나의 동상이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