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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pr 27. 2021

파랑새는 찻잔 밑에 있다

수달가족의 해풍소

동생이 카톡으로 급하게 말했다.

“언니 내가 문제 하나 낼께. 생각을 말해봐?”

“영희가 머리를 감지 않고 드라이 샴푸로 머리를 감았어. 왜 그랬을 거 같아?”

“응. 피곤했나 보지!”

“아 역시 언니는 F형이 맞나 보다.”

“F형은 사람을 먼저 봐서 보통 피곤을 생각하고, T형은 보통 드라이 샴푸를 생각해서 게으른, 더러운으로 분석한데”

“ 지금 MBTI 방송하니깐 얼른 25번 틀어봐”


TMI 뉴스라는 방송에서 MBTI 순위와 성향 분석을 방송하고 있었다. 중간부터 봐서 전체적으로 보지는 못 했지만 은근 기대하며 보게 되었다. 내가 전에 재미로 검사했을 때는 ENFJ 유형이 나왔다. MBTI 검사는 외향과 내향, 감각과 직관, 사고와 감정, 판단과 인식 경향성을 판단하여 16가지 성격 유형을 나눈 것이었다.


E(외향성) / I(내향성)

S(감각) / N(직관)

T(사고) / F(감정)

J(판단) / P(인식)


ENFJ 유형은 ‘정의로운 사회 운동가’ 유형이었다. 나는 에이 아닌 거 같은데 하며 잊어버리고 있었다. 오늘 방송에서 분석한 바로는  ENFJ는 친화력이 좋고 열정 만수르라는 내용이었다. 아주 외형적인 사람이었다. 비슷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서 다시 검사를 해봤다. 이번에는 INFJ가 나왔다. 앞에 E는 외향적을 나타내고 I는 내향적을 나타낸다. 뒤에 세 가지는 또 똑같이 나왔다. 차츰 신뢰가 가기 시작했다. INFJ는 선의의 옹호자라고 한다. 점점 신기하기도 하고 미심쩍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사람을 알 수 있다면 이해 못 할 사람 없겠다는 생각과  외 내향적 성격을 다 가지고 있는 나를 다 찾아내는 검사도 재밌었다. 맞는 부분도 은근히 많았다. 나는 온 우주가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나고 내가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같은 물질로 만들어졌고 다시 만나게 되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귀신도 사실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서운 거 보면 어딘가에서 그들의 할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이 귀신이 되는지 아니면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도 섬뜩한 사람이 있는 거 보면 영적 세계를 없다고 하기도 그렇다.


나는 운세는 잘 보지만 믿지는 않으려 한다. 나쁘게 나오면 기분 나빠지고 좋게 나오면 기대하게 되니 나쁘든 좋든 금방 잊어버리는 편이다. 혈액형별 성격을 믿기보다는 직감을 더 믿는다. 그래도 잘 되고 싶어 풍수지리는 조금 지키려 하고 운이 좋길 기대한다. 그래서 집을 볼 때 기왕이면 남향을  선호한다. 현관은 깨끗이 하고 베란다와 창가를 트이게 하는 편이다. 집을 보러 갈 때 담벼락에 이끼가 끼는지 눈이 잘 녹는 양지바른 집인지 정도는 유심히 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외 내향적, 직관적, 감정적, 판단적’인 유형으로 나온 것이다. 비교적 잘 맞는 것 같다. 내가 열정 만수르라니 새삼 느꼈다. 좋아하면 전력 질주하는 면도 있다. 앞만 보는 말과 같은 성향이 있기는 하다. 그게 열정이었구나. 다 맞을 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다른 것이 보였다. 인간이  듣고 싶은 욕망을 건드리는 게 MBTI 검사겠구나 싶었다.


우리는 늘 분석하고 확인하려 든다. 그리고 듣고 싶어 한다. 나를 처음 본 신 제자에게서 또는 운세 어플에서 듣고 보려고 한다. 또 통계적 분석이라는 여러 검사들로 나를 정의 내리고 싶어 한다. 다른 때는 내가 말하기 바쁘고 듣기가 약한 게 사람이지만 나에 대한 일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어 한다. 나 또한 그랬다. 답답한 일이 있으면 운세 어플을 보고 남편에게 타로점을 봐 달라고 졸졸 따라다녔다. 그러면 남편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 방식으로 책을 보고 묘한 분석을 말해줬다. 책을 상황에 접목하지 못하는 초보 셀프 타로가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거라도 듣고 싶은 심리가 이것과 같았다.


우리는 왜 이런 걸 좋아하는 걸까? 사람들 마음을 차지하는 불안이 요인 같았다. 현재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를 잘 모르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더 잘 알고 싶어 한다. 더 잘 알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길 수 있다. 나의 강점을 찾고 듣고 싶은 욕망도 있다. 사람에게서 듣는 평가보다 덜 기분 나쁘고 객관적 평가기도 하다. 아는 사람에게서 평가를 듣는 건 매우 편치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대부분 희망적 메시지를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나의 장점을 더 듣고 싶은 욕망이 그렇다. 나의 객관적 단점을 들으면 보완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람들이 다 센척해도 속은 보드랍고 여리구나 싶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헤매는 듯하다. 파랑새는 숨은 그림 찾기와 같은데 우리는 대부분 모르고 있다. 친구의 전화에서도 찻잔에 온기에서도 숨어 있을 수 있다. 의자 다리에도 숨어 있을 수 있는 파랑새를 찾아 행복하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내일이 조금 더 희망찼으면 좋겠다. 숨은 그림을 찾는 동안 당신과 나의 불안이 훨훨 날아가기를 바란다. 찻잔이 식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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