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샘이 너무 좋다

2021년 기록

by 이음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초등학교 등교 수업이 줄어든 지 일 년이 넘었다.

지금은 주 2회만 등교하고 3일은 2교시 줌 수업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미디어 교육을 하고 있다.

우리 아이는 코로나 이전까지는 자기 주도 학습이 되는 똘똘한 녀석이었다.

발표도 잘하고 활동적이어서 학교생활에도 적극적이었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숙제를 하고 문제집을 풀고 운동을 갔다 오는 평범하고 걱정할 게 없는

아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 주도 학습도 안 되는 띵가띵가 생으로 변해 버렸다.

모든지 조금 이따가 한다고 하고, 잠시만 쉬었다가 한다고 한다.

마음에 준비가 그렇게 안됐고, 매일 필이 안 받아서 못한다고 한다.

세상 모든 잔머리의 집합체이며 잘 쓰던 글씨는 갯지렁이가 수묵화를 그리듯 춤을 추고 있다.

나는 지난 일 년 동안 불가로 들어가 깨달음을 받으면 이런 심정일까 싶게 사리가 쌓여 갔다.

공동체라는 틀 안에서 규칙이 있다는 것이 태도와 습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깨닫는 한 해였다.


작년에는 정말 1년을 놀다시피 하고 학년을 마쳤다.

숙제는 있으나 숙제를 검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작년 담임선생님은 학습준비물을 나눠주고 e학습터 학습페이지를 공지해 주는 정도였다.

나름의 혼돈의 과정과 시간이었겠지만 집에서 신경 써주지 않는 아이들은 큰일이었다.

1년이라는 공백은 학년이 늘어날수록 격차가 생길게 불 보듯 뻔했다.

아이들의 학습차 보다 습관과 태도가 완전히 변해버리고 정착해 버린 게 문제였던 것이다.


나는 일단 숙제 검사만 해주셔도 더 바랄 게 없었다.

작년에는 숙제 내는 선생님은 있는데 검사해주는 선생님은 없었다.

스스로 제출을 하니 안 내어도 된다고 가져가라고 해서 다시 가져왔었다.

이렇게 되면 사실 어린아이들은 숙제를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숙제 검사도 안 하면서 숙제를 내는 이유가 뭐냐고 아이가 물어보는데 나는 참 난감했다.

인정받는 게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하기에는 아이가 아직 어렸다.


소아과에 가면 비타민을 나눠준다.

아이들이 병원을 싫어 하지만 진료가 끝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암시이자 보상이 된다.

동기부여의 시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김창옥 교수가 말했다.

'사랑의 가장 첫 단계는 내가 무언가를 했을 때 반응해 주는 것이라고.'

'자존심은 잘나고 싶은 마음이고 자존감은 내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의 상당수가 인정을 받은 경험이 있고 그 계기로 인해서 열심히 하게 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인정 욕구는 인간이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라고 한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 에너지를 얻고 힘든 시기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되라는 말이다.

그러다 보면 해내는 자신에 대한 만족감, 성취감이 나 자신을 인정하고 소중하게 느끼는 자존감이 될 것이다.


사람이 인정 욕구를 빼면 살아가는 동기가 무엇이 있을까?

정성껏 저녁을 만들어 가족이 맛있게 먹으며 배불러하는 모습을 보는 게 엄마의 노력에 인정을 받는 게 아니면 뭐라는 말인가?


엄마가 집에서 억지로 숙제를 시켜 보내면 학교에서 검사를 해주셔야 한다.

작은 것이라도 하나씩 해냈다는 성취감과 만족감 그리고 인정을 받아야 아이들은 하기 싫은 마음의 갈등을

이겨내는데 작은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 담임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이신데 아주 정확하고 열정적인 분이시다.

숙제 검사를 꼬박꼬박 해주시는 점이 나는 제일 좋다.

알림장에 [국어 독서록 3명 미제출함. 내일까지 제출 요망.] 이렇게 기재해서 보낸다.

그리고 합리적인 분이다. 모든 과목에 배움 노트를 작성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과목과

요점이 있는 과목만 배움 노트를 작성하게 한다.


학기초에 숙제를 안 해오면 어떻게 할지 투표를 하였다고 한다.

아이들의 의견을 내고 투표 결과로는 계단 청소를 하기로 결정이 났다고 했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이다. ㅎㅎㅎ

그래서 아이들이 숙제를 안 해오면 남아서 계단청소를 하는 것이다.

반성문도 작성하게 하고 줌으로도 숙제 검사를 하신다.

학교 공지가 있는데도 따로 부모에게 톡으로 시험 본다고 알려도 주신다.

하교하는 아이들 사이로 계단을 쓸고 닦는 일은 아이들에게도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준다.

창피함을 느끼는 아이들은 다시 계단 청소가 하고 싶지 않으니 숙제를 할 수밖에 없다.

먹고 대학생인 우리 아이도 계단청소를 여러 번 하고 왔었다.

새 학년으로 올라오고 2달 동안 숙제를 하다 안 하다를 반복했다.

처음이니 선생님이 기회를 주셨던 것 같다.

기회를 주시는 날이 있으니 했다 안 했다를 반복했다.

오늘은 잘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일말에 희망이 있었기에 초긍정 마인드로 다녔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원칙대로 계단 청소를 매일 남아서 하게 됐나 보다.

아직도 학교 다녀오면 가방도 거실에 두고 옷을 훌훌 벗으며 뱀처럼 자기 방으로 몸만 쏙 들어간다.

들어가서는 오후 내내 놀다가 저녁이 되면 12시가 넘어서라도 숙제는 다 하고 잔다.

더는 아이들 발길 사이로 계단을 닦고 싶지 않다고 한다. ㅋㅋㅋ


유쾌 상쾌 통쾌~


내 속이 다 시원하다.


그래 이거지!!


무조건 부모만 학생을 케어할 수는 없지~


아! 이제야 살겠다~


오로지 아이를 엄마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고 힘들었다.

여기까지는 '꼼꼼하신 선생님이라 잘 봐주시는구나'하고 흐뭇했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어제 수업 소리를 들으니 다들 열심히 말하는데 왜 너만 조용히 하고 있었어?”

“어제 우리가 다 피곤해 보인다고 선생님이 마피아 게임하게 해 주셨는데 나 시작하자마자 죽었어.

마피아한테”

“그래서 조용히 있었어, 게임 끝날 때까지”

“아 그랬구나”

“선생님 좋다. 너네 피곤해 보인다고 게임도 시켜 주시고”

“어제는 숙제는 다 했었어?”

“안 해서 혼난 과목은 없었어?”

“응 난 숙제 다 했지”

“근데 매일 청소해도 숙제 계속 안 해오는 단골들이 있어”

“이 애들은 오늘도 나머지 해”

“엥? 오늘 줌 수업인데 어떻게 나머지를 해?”

“응.. 줌으로 남아...”


ㅋㅋㅋ

아~ 난 빵 터졌다.

줌으로 나머지를 하다니


“남아서 뭐해?”

“응~ 귀에 피날 때까지 계속 잔소리하시고, 잔소리 들으면서 숙제 다 해야 줌 나갈 수 있어 "


와우~

이 정도면 둘코락스 100병이다.


학교는 체벌 금지가 되고 인권존중이 잘못 지향되고 있었다.

교단은 더는 교사가 아닌 직장인으로 전략하게 만드는 곳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선생님의 권한은 줄어들고 줄어드는 권한만큼 선생님의 열정도 식어갔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고 학생들의 비행은 날로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학생들에게 도덕은 화석이 된 지 오래고 잘못된 권리를 주장하고 개인주의로 똘똘 뭉친 결핍 덩어리로 변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학생들은 자본주의의 더 없는 피해자이기도 하고 가장 큰 골칫덩이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틀을 지키면서도 아이들에게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는 선생님도 계신다.

원칙을 지키고 학교라는 교육의 틀을 가르치시는 선생님께 진짜 감동받았다.


내가 숙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최소한의 규칙'

'최소한의 태도'

'최소한의 습관'

이라고 생각한다.


리더가 있으면 따를 줄 아는 사람은 되어야 한다. 그게 최소한의 규칙이다.

따를 줄 모르는 사람은 리더도 될 수 없다. 그리고 일원도 될 수 없다.


서로의 신분에 맞게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 학생이면 학생다워야 한다. 학생이 해야 할 일은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교과과정 내에 주어진 과제를 해내는 일이다. 그것이 최소한의 학생으로서의 태도이다.


할 일이 있어도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루는 일이 반복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그 사람의 인생이 된다. 그래서 할 일을 미루지 않게 하려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습관이다.


그래서 공부는 못해도 되지만 숙제는 하라고 한다.

그래서 학원은 안 보내지만 숙제는 하게 하려고 한다.

매일 한 가지라도 꾸준히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어디를 가든 그 식당에 주 메뉴를 시키는 게 났다.

무엇을 하든 기본에 충실해야 그다음이 있다.

그런데 교육만큼은 거꾸로 가고 있다.

등교 수업을 해도 미디어 교육시간이 늘어나고 있고, 필기 시간은 거의 없어지고 있다.

아이들은 연필 잡는 것을 제일 싫어하고 학업에 시간을 투자하는 걸 제일 싫어한다.

시간을 들여야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즉각적 반응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반복하는 과정을

기피하고 싫어한다.


사회로 나가기 전 기본을 잡아주는 사람들이 선생이며 부모이다.

선생과 부모가 함께해야 아이들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환경이고 혼돈의 시간이다.

선생님도 부모도 아이도 모두가 잘 모르는 길을,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모르는 길일지라도 가야 한다.

넘어지고 일어서며 가고 또 가야 한다.

잡아주고 끌어주며 함께 가야 한다.


지금 담임선생님처럼~

우리 학부모님들처럼~

우리 아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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