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7.7-14)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이 글은 매우 우울합니다. 정서가 약하신 분은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울증_거꾸로 쓰는 일기/소방훈련>
어디서부터 쓸 수 있을까요? 일주일은 제겐 참 긴 시간이었어요. 잊지 않으려고 메모를 해뒀지만, 메모가 듬성듬성입니다. 건망증과 치매 예방도 해 볼 겸 생각나는 대로 써볼게요. 오늘 오전에는 식빵을 세탁실 세제 옆에 두고 왔거든요. 확실히 검증이 필요하겠죠?
대신 날짜는 무용한 일기가 되겠네요.
참 많은 감정들을 체득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영화 ‘23 아이덴티’를 보셨나요? 다중인격을 다룬 영화인데요.
제게도 아주 살짝 비슷한 일이 일어나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제가 다른 인격이 나오고 전에 인격을 기억 못 하고 이랬던 건 전혀 아니고요. 그런 건 전혀 염려치 마셔요.
하지만 제 생애 처음으로 경험한 무서운 일이었어요.
초저녁이었어요. 컨디션이 살짝 안정되길래 책을 고르고 있었어요. 그때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내면에서 화염처럼 솟구쳤습니다. 마치 느낌은 ‘파괴, 분노‘ 였어요.
제 맘이 너무 놀라서 지켜보는 영혜가 얼른 나왔습니다.
“무슨 일이야?”
“모르겠어, 나도 처음이야, 이런 감정이 “
“침착해, 나한테 맡기고 넌 가만히 있어”
“가만히만 있어, 내가 해결할게”
전 그렇게 지켜보는 영혜에게 맡기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습니다. 눈을 감고요.
바라보는 영혜가 바라보는 저의 내면은 불구덩이였어요. 온몸을 태울 것처럼 활활 타는 분노는 감정 속에서 행동했습니다. 책꽂이를 엎어버리고, 책상에 노트북을 집어던지고, 화장대를 다 쓸어 엎고, 티브이를 벽에 던졌어요. 화장 거울을 보며 머리를 가위로 미친 듯이 자르더니 나중에는 머리를 미친 듯이 잡아 뽑았어요. 그리곤 고성을 미친 듯이 지르다가 목에서 피를 토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이 필름이 현상되듯이 영화처럼 보였어요.
“이건 불안장애든 우울증이든 어떤 증상의 하나일 거야. 내가 알아볼게. 넌 가만히 있어. 내가 일단 정리할게 “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너무 놀라고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바라보는 영혜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라 차분하거든요.
나에게 보여 준 이 내면의 현상은 화의 욕구이자, 실현하지 못한 분노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저희가 욕을 하며 싸우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부부유형은 전혀 아니에요. 물건을 던지는 유형도 아니고요. 저희는 화가 나면 더 차분히 팩트만 얘기하고 바라는 바를 전달하고 끝냅니다. 둘 다 언어든, 신체든 폭력성은 전혀 없어요. 그런데 제 안에 이런 분노가 나온 게 너무 놀라운 거예요.
바라보는 영혜가 차분하게 상황 정리를 시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윤호야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엄마가 지금 급하고 정말 진지해서 그래?”
“알겠어. 티브이 끄고 갈게”
“엄마가 지금 알 수 없는 분노라는 감정을 느껴.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누구의 잘못이 아니야. 그냥 엄마 우울증 증상 중에 하나 같아 “
“문제는 엄마가 이 감정을 주체 못 하면 밖으로 나올 수 있어. 엄마는 윤호한테 화내거나 꼬투리 잡고 싶지 않은 거 알지? 윤호는 잘 못이 없잖아, 사랑하는 아들한테 그러고 싶은 엄마가 어디 있겠어 “
“그러니 윤호가 엄마 좀 도와줄래?”
“어떻게?”
“엄마가 괜찮아질 때까지만 방에 좀 가서 놀고 있을래, 피아노 치고, 타악기 연주해서 시끄럽게는 말고. 미안해.. 엄마가 아파서 눈치도 많이 보이고, 너도 힘들지? “
“아냐, 그래도 엄마가 내 엄마 인 게 좋아. 알겠어 들어가 있을게. 조용히 놀고 있을 테니 괜찮아지면 불러 “
“고마워 아들”
그리곤 남편을 불렀어요.
“윤호아빠 내가 지금 심각해요”
“왜?”
“지금 속에서 분노가 말할 수 없이 심하게 일어나..”
“보기엔 멀쩡해 보이잖아 “
“속은 안 그래? “
“응? “
“속으로 감정을 다스리고 있다고요 “
“왜 화났는데?”
“아니 본연의 나는 화가 않았는데, 우울증 증상 중에 하나 일 수 있다는 거지 “
“근데 이 감정과 내가 지금은 분리되어 있지만, 하나가 되면 위험하잖아 “
“흠.. “
“여보나 윤호가 시비라도 걸면, 아님 꼬투리라도 잡히면 내면의 감정이 튀어나와 파괴하고 폭력적으로 표출되고 싶을 거 같아 “
“흠…..”(깊은 한숨)
“지금 안정제를 두배로 먹었어, 주위에 사람을 물리고 좀 조용히 명상을 해야 할 거 같아 “
“우울증에 화라는 증상이 있나 봐”
“윤호한테는 방에 들어가 놀고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
“여보도 나 좀 혼자 있게 방문 열었다 닫았다 계속하지 말고.. “
“혹시 애기가 사춘기가 불쑥 올라와서 화내면 여보 방에 데리고 가서 좀 조용히 들어주고, 다시 한번 엄마 아프니 나중에 얘기하자고 이해를 구해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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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곤 방문을 닫고 불을 끄고 명상을 시작했어요. 명상을 30분 하고 영화를 봤어요. 관심을 돌리려고 한 거죠. 그렇게 네 시간 정도 지나가니 차츰 사라졌어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분노란 표출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바라보는 것이 도움이 될까? ‘아, 모르겠다. 의사 샘한테 물어봐야지.
속 시끄러운 내면에 불이 꺼지니 과호흡이 연달아 오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약하게
점점 강하게.. 아로마 향을 맡으며 진정을 시키고 누워 있는데 베개커버가 다 젖었더라고요. 크게 숨을 쉬면 악화된다는 걸 알기에, 자각 호흡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숨 못 쉬는 고통이 보통 힘든 게 아니잖아요.
그때..
가버린 줄 알았던 화염의 불씨가 다시 돌아와 영상을 보여 줬어요. 마치 재생처럼요. 똑같이 온 집을 다 부수고, 머리를 자르고는 이번엔 칼로 내 팔을 막 찍더니, 창문을 열고 확 뛰어내리는 거예요.
이때 엄청 놀랐습니다. 거의 얼굴이 다 하얘졌어요. 누구에게 얘기해도 이해받기 어려운 일이잖아요. 미쳤다고 할 수도 있고요.
(나)
“아, 간 게 아니구나, 뜻대로 되지 않으니 숨어 있었어. 자멸하는 거처럼 스스로 뛰어내려 버린 걸까? “
“아님 처음부터 내가 이렇게 하길 바랐던 걸까?”
(바라보는 영혜)
“글쎄, 조현병인가?”
“아님 우울증 증상인가?”
“암튼 다스리자, 내가 다스릴게 “
“넌 힘들면 약 먹고 자“
“절대 항복만 하지 마”
너무 놀라서일까요? 평상시 있던 부정맥이 와서 심장통이 시작됐어요. 숨쉬기는 힘들지, 심장은 조여들지,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걸 보곤 너무 놀랐지.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들을까 봐 소리 없이 울고 있었어요.
문을 살짝 열더니 아들이 물과 수면제를 가지고 왔어요. 너무 고통스러워하니 자야 한다는 걸 안거 같아요.
“엄마 많이 아파? ”
“응, 잘 견디고 있어”
“약 가지고 왔네”
“고마워, 먹고 잘 잘게”
소리를 안 내렸는데도 울컥울컥 눈물이 멈출 줄 몰랐습니다. 심장통증을 겨우 보내고 자려는데 눈물은 갈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아들이 불을 끄고 옆에 누워서 엄마 손을 잡아주며..
“엄마 내가 지켜 줄게”
“괜찮아, 내 손잡고 자자 “
“아프면 나 꼭 깨워..”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