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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고 일어났습니다(23.7.6/목)

어느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의 일기​

by 이음

<우울증_정신과 진료일이었어요>


오늘은 무지 더웠지요. 공기 자체가 뜨겁더라고요. ‘해님도 쨍쨍, 공기까지 아뜨’


역시나 2주에 한 번씩 정신과 가는 날이네요.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그래 이주동안 어땠어요?”


“힘들었습니다”

“이틀 전까지는 사경을 헤맸어요 “


“어떠셨을까요? “


“과호흡 재발이 가장 심했고요. 그럴 때마다 명치에서 뭔가 알 수 없는 고통이 막 올라오고요. 절규에 가깝게 눈물이 계속 나왔어요 “

“두통도 너무 심하고, 죽고 싶다 보다는 쉬고 싶다는 생각, 지친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어요 “

“왼쪽 얼굴에 마비 같은 경련이 오더니 몇 분 있다가 오른쪽도 왔어요 “

“꼭 마비 같았고요. 얼굴 반씩 따로따로 왔어요”

“막 소리도 지르고 싶었고요. 진짜 두 번은베개에 대고 소리도 질렀어요 “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요. 진짜 미칠 거 같은 기분이 자주 들었어요 “

“명치에서 뭔가 회용돌이 치는데 이게 고통인지, 감정인지 모르겠어요”


“불안장애죠. 뭐..”


“경련은 왜 난 걸까요?”


“불안장애니깐요. 분출이 안 돼서 그렇죠 “

“소리 지르고 싶고, 답답하고, 머리 아프고, 경련 나는 것도 다 똑같아요 “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다 불안장애 증상이에요”


“네…”(이런 말은 나도 하긋넹)


“또 다른 거는요?”


“수면제를 안 먹고 자보려고 해 봤는데요 “

“수면안대하고 새벽 네시까지 그대로 있었어요. 그냥은 잠이 안 와요”


“네..”

“또”


“안정제가 내성이 생긴 건지 불안이 심할 때는 한알 가지고는 진정이 안 돼요. 반알 은 더 먹을 때도 있습니다 “


“아, 약은 더 처방 못합니다”

“지금 저희 병원에서 드릴 수 있는 최대치예요”

이런 모범 병원이래요


“네, 약 더 달라는 건 아니고요”

“증상이 그랬다고요”


“이 약 가지고 안되시면 입원하셔야 해요 “”다른 분들은 이 정도면 다 버티시거든요”


“네..에“

(아, 뭔가 기분 나쁨)


사람마다 다른 건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그렇더라고요. 뭐 엄청난 위로를 바란 건 아니지만 퉁명스러운 말투와, 상투적인 대답이 좀 심드렁했어요. 툭하면 입원해야 한다고 하시면 더 불안하잖아요. 선생님은 참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시는 스타일이시구나 했습니다.


“선생님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명치에 뭔가 뭉쳐 있는 고통이 굉장히 힘든데요.. 이게 뭘까요?”

“전 이 감정을 모르겠어요?”


“오늘도 약 똑같이 이주드렸고요 “

“이 주 후에 뵐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오늘 또 동상이몽이었어요.

너무 뻔한 대답.

처방에 급한 면담.


한편으론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론 대답도 안 해주시는 선생님이 야속했어요.


인사를 하고 나오니 1년을 다니면서도 환자들이 꽉 찬 모습은 처음 봤어요. 제가 진료를 받고 나오니 그렇게 많이 와 계시더라고요.


몸을 지탱하기도 힘든 분들이 벽을 잡고 서서 버티시는 걸 보며 선생님이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왜 이렇게 아픈 분들이 많을까요?


세상에 아름다운 것만 보기에는 수면 아래의 그림자가 너무 짙네요.


병원을 나오면 드는 생각이 저분들의 파란 한 시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참 짧은 계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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