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기록
나는 드디어 좀 나아졌다.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남편이 출발한 뒤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이런 상황인데 지금 갈 수가 없어. 꼭 가 뵈어야 하는 분이거든..”
동생이 내 얘기를 듣자..
“나도 모르겠다 언니, 작은 언니랑 통화해 봐”
“그런 건 작은 언니가 잘 알잖아”
“그렇지.. 근데 내가 지금 말할 힘도 없어 “
“화장실도 혼자 못가”
“언니 숨차, 좀 쉴게 “
“응, 쉬어 “
전화를 끊고 아로마 치료를 계속하고 있었다. 조금 힘이 생기자. 작은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내가 지금 엄청 힘들어”
“어, 왜?”
“이만저만 이런 일이 있었어”
“어떻게 해야 해?”
“기어서라도 가고 싶어”
“가면 좋지”
“근데 가다 줄초상 나겠다”
“일단 제부가 도착하기 전에 네가 먼저
외숙모님께 문자를 드려 “
“이만저만해서 못 찾아뵙게 되어 송구스럽다고.. ”
“나중에라도 따로 찾아뵙겠다고 문자라도 드려 “
“그거라도 우선 하는 게 났지 “
“응, 그러네”
“그래야겠다”
“고마워 언니”
“끊어”
역시 연륜은 무시 못한다. 문자라도 보내드리고 나니 차츰 고통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몇 시간 사이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다가 나온 기분이다. 상황이 변한 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나의 마음의 자세는 조금은 의연해졌다. 난 참 차분하다가도 가끔씩 잘 놀라는 편이다. 마침 지금 외숙모님께 답장이 왔다.
“마음이라도 고맙고 너도 얼른 났길 바란다”
답장까지 주시니 한결 마음이 나아졌다 “
나는 삶과 죽음에 큰 의미가 없다. 알고 보니 나의 죽음에 관해서만 이었다. 타인의 죽음은 굉장한 사건이고 아픔인데. 난 왜 나의 이별만 준비되어 있고, 관대했던 걸까.
나도 몰랐다. 우울증이 많이 떠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해 보니 난 어젯밤에 내 장례식장에 올 사람들의 리스트를 카톡으로 정리해 뒀다. 카톡 친구 이름 앞에 이모티콘을 추가했다. 이분들에게만 나의 부고를 알리면 된다고 남편과 동생에게 알려줬다. 그냥 했던 행동이었는데 아니었던 거 같다.
난 이런 우울증의 뿌리를 마음속에 내리면서 모르고 있었다. 외삼촌의 부고를 통해 거울 효과를 체험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 아팠구나.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우울증의 뿌리를 뽑을 때까지 나는 좀 더 인내하고 겸손해져야겠다.
나는 나의 죽음에도 신중해지고, 지금 나의 삶에도 깊이 감사해야 한다. 나에게도 소중한 사람들이 가득하고, 꿈꾸고 싶은 미래도 다 그려져 있다. 나는 아직 책임질 애기도 있고, 살아야 할 이유가 가득하다.
살며 받은 사랑의 반도 못 값았는데 벌써 갈 준비를 하면 안 된다. 그러니 정신 번쩍 차리자. 그래야 날 지킬 수 있다.
아..
유난히 피곤한 하루다.
오늘은 좀 편히 잠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