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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tel K Dec 08. 2022

그레텔 이야기 1

Gretel, Gretel의 첫 번째 어른 동화



어서 오세요. 편하신 자리에 앉으세요. 새들이 요란하게 찡얼거리지 않았다면 빵에 정신이 팔려서 손님이 오신 것도 몰랐겠네요. 오늘 운이 좋으신데요. 마침 갓 구운 빵이 나왔거든요. 원하신다면 이 마을 특산 치즈와 양파 수프를 곁들여서 드릴게요. 


손님도 '땅끝 성'으로 가시는 중인가요? 저희 카페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그곳 가는 길에 들르시거든요. 아, 그럴 작정으로 오긴 했지만 정말 거기에 가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요. 그저 남들을 따라온 것 같아 망설이시는군요. 흠, 그래요. 사실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기란 쉽지 않지요. 생각과는 전혀 다른 곳에 끌리고 있을 수도 있고요. 저는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안 될 곳에 마음이 끌려서 한동안 아팠던 적이 있었어요. 


그게 어디였냐고요? 마녀가 사는 집이었어요. 잠깐만요. 먼저 빵이 식기 전에 가져다 드려야지요. 제가 왜 하필 마녀의 집에 마음을 뺏겼는지 궁금하시다면 음식을 드시는 동안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혹시 어린 헨젤과 그레텔 남매에게 일어났던 오래전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제 이름은 그레텔이에요. 마녀의 집을 찾아갔던 건 저의 두 번째이자 가장 긴 여행이었죠. 아시다시피 아빠가 우리 남매를 숲속에 버린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첫 번째 여행을 해야 했으니까요. 사람들은 다시 아빠의 집에 돌아온 우리 이야기를 해피엔딩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아빠를 다시 만난 기쁨은 딱 일주일 만에 끝났고 헨젤은 완전히 변해버렸어요. 나와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어요. 그땐 오빠가 나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언제나 마녀에게 고분고분했던 게 싫었던 모양이라고 믿었죠. 얼마나 속상했던지. 오빠는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한참 뒤에야 알아챘어요. 헨젤이 변한 건 바로 마녀의 보석을 훔친 일 때문이었다는 사실을요. 네, 우리는 도둑질을 했었고 훔친 보석은 아빠가 모두 가져갔지요. 그 즈음 헨젤은 거의 매일 아빠와 싸웠어요. 헨젤은 아빠에게 내 몫을 돌려달라고, 내가 그걸 얼마나 어렵게 가져왔는지 아느냐며 따졌지요. 아빠는 어린놈이 벌써 돈을 밝히고 어른을 무시한다며 화를 냈어요. 아빠는 평소엔 순한 사람이었지만 언제나 술기운을 빌려 소리를 질렀지요. 헨젤의 마음을 몰랐던 나는 그저 더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면 원래의 오빠로 돌아올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우리가 한때 새엄마라고 불렀던 여자는 이미 집을 나가고 없었어요. 나는 그 여자를 하이에나 아줌마라고 불렀죠.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을 동물로 상상하기를 좋아했어요. 그러면 싫은 사람들도 조금은 견딜 만해졌거든요. 하지만 아무래도 싫은 동물이 있었는데 그게 하이에나였어요. TV에서 보니 하이에나들은 아직 숨이 끊어지지도 않은 남의 새끼들을 그대로 파먹더군요. 하이에나 아줌마는 아빠에게 뭐라고 꼬드겼을까 상상했어요. 나랑 살고 싶으면 애들을 내보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숲속에 두고 와. 그때 나는 어떻게든 아빠가 아니라 그 여자를 악당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으니까요. 


아빠는 보석을 얻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왔지요. 예전에 가수였다는 아빠의 새 아내는 새로 산 옷 입는 걸 몹시 좋아했고 아무 때나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어요. 예쁘지만 시끄러운 앵무새처럼요. 아빠는 아내를 '우리 마님'이라고 불렀어요. 앵무새 마님은 목소리가 상한다며 절대 찬물을 만지거나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차를 준비했어요. 앵무새 마님에게 찻잔을 전하고 나면 옆에 누워있던 아빠는 나를 불러 끌어안고 내 귀에 간지럽게 속삭였어요. 

우리 딸 착한 딸, 아빠가 다시는 오빠랑 싸우지 않을게.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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