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외부자 관점에서의 정리
아카이브, 아카이빙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여전히 아카이빙이라는 말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낯설어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경험이나 정보들 그것을 기록하고 축적했을때 새로운 가치들을 발굴할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듯 하다. 전문적인 아키비스트(archivist)는 아니지만 아카이빙을 도구로 기획을 해보고 싶은 사람으로 지금 아카이브의 여러 모습을 스케치해보고 싶었다.
아카이브(archive)의 사전적 의미는 '기록보관소','기록보관소에 보관하다'라는 의미이다. 디지털 시대에 엄청난 속도로 생산되는 정보/기록들은, 언젠가는 저장 공간에 한계가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곧, 많은 정보들 가운데 영구적인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정의하고 골라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쌓여있기만 한 방대한 기록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현재/미래에 유의미한 기록들을 골라내고 재배열하는 의미부여/가치부여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 아카이빙의 모습을 살펴본 결과, 아카이빙의 대상은 크게 개인적인 스토리/경험/생각 또는 특정 집단,공동체,공간,문화/사회현상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을 아카이빙 하는가와는 상관없이 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가치를 요약하면 크게 세가지- 주관적인 가치, 역사적/공익적 가치, 그리고 정보/컨텐츠로서의 가치를 볼수 있었다.
개인적인 스토리/경험/생각에 대한 아카이빙
왜 개인적인 스토리/경험/생각에 대한 아카이빙을 할까? 먼저는 주관적인 의미부여를 들수 있다. 인스타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개인의 일상적인 기록들을 많이 남기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보다 긴호흡으로 삶을 돌아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과거에 대한 정리작업을 통해 지나온 시간에 대한 의미부여를 하고 앞으로 나갈 방향들을 찾을 수 있다. 스티브잡스는 과거의 경험을 돌아보고 연결하는 것(connect the dots)이 결국은 미래를 향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카이빙은 일종의 connect the dots의 행위이다.
개인의 이야기가 언제나 주관적인 가치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이나 기록이 역사적 의미를 획득하는 시점은, 개인의 삶이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사건이나 현상과 맞물리게 될때이다. 그때 개인의 시공간, 경험은 더이상 개인의 것에만 그치지 않게 되고, 사람들은 역사적인 사건의 단면을 개인의 삶이라는 창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볼수 있게 된다. 최근의 화두는 그간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소문자 역사들, 사회적 편견이나 프레임으로 그간 자기의 목소리로 이야기할수 없었던 사람들 - 여성, 이주민, 난민, 성소수자 등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하는 흐름이다.
역사적 의미와 같은 거창한 의미까지는 아니어도, 특별할 것 없는 전형적인 개인의 이야기에서도 사람들은 공감, 위로, 감동,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고, 이때 개인의 이야기는 컨텐츠로서의 가치를 획득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카이빙하는 기업인 스토리콥스(storycorps)의 설립자 Dave Isay는 '당신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전세계가 듣고 싶어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Everyone around you has the story the world need to hear)'라고 얘기한다. Dave Isay는 가공된 스토리가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가 가지는 힘, 평범한 사람들의 구술이 공감을 획득할수 있는 저력으로, '진실되고 순수한 이야기', '평범한 사람들의 말에 있는 시와 지혜, 그리고 우아함' 을이야기한다.
집단/공동체/지역/문화/사회현상에 대한 아카이빙
집단/공동체에 대한 대표적인 아카이빙의 형태로 커뮤니티 아카이빙(community archiving)이 있다. 또는 공동체 아카이빙이라고 하기도 한다. 커뮤니티 아카이빙은 특정한 신념, 가치관, 아이덴티티를 공유하는 집단/공동체가 스스로의 정체성과 문화적 자산을 기록하는 공동체에 의한, 공동체를 위한, 공동체의 아카이빙이다. 성미산마을, 홍성 풀무공동체, 그리고 성소수자 아카이브인 퀴어락, 둔촌주공,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아카이브 등을 예로 들수 있다.
유사한 형태로 서울시나 경기도의 마을만들기 사업에서도 마을 아카이빙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전통적인 의미의 커뮤니티 아카이빙과는 좀 차이가 있다. 우선 공통의 정체성을 남기고자 하는 자생적인 필요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정부 주도 정책에 따라 진행되는 점이 가장 큰 차이이다. 또한 이미 공유된 문화 정체성을 기록한다기보다도, 마을 단위의 공동체적 교류를 늘려가는 과정에서 어떤 자원이 있고 어떤 이야기들을 할수 있는지 탐색하는 활동에 가깝고 아카이빙 자체가 마을을 만들어가는 활동이 된다.
또 하나의 흐름으로 아카이브를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보고 그를 통해 도시/지역 재생, 지역 활성화를 하고자 하는 흐름이다. 이러한 유형의 특징은 특정 지리공간을 중심으로 콘텐츠가 될만한 것들을 발굴해서 출판, 커뮤니티 매핑 등의 형태로 색다른 지역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지역의 독자적인 콘텐츠와 브랜드를 창출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어반플레이, 성북신나, 수원지역잡지 사이다 등이 그러한 사례로 보여진다. 또한 이와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지역성을 상품에 녹여냄으로서 차별화된 고유 브랜드를 추구하는 지역 출판의 사례들(통영의 남해의 봄날)이 있다.
역사적/공익적 가치에 주목해 아카이브를 남기는 활동은 4.16아카이브나 우토로마을에 대한 평화기념관 건립을 예로 들수 있다. 관련이 되어있는 당사자가 커뮤니티 아카이브의 형태로 할수도 있고, 기억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공공부문에서 하거나, 공감하는 시민들이 모금을 통해 아카이브를 시작할수도 있다.
다음 글에서는 출판 등의 미디어와 구분되는 아카이브만의 특징, 그리고 민간 아카이빙 비즈니스 모델의 가능성에 대해서 적어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