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생 후르츠(Life is fruity) 후기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땅이 비옥해지면, 열매가 영근다.
단순함에 심오함이 깃든 영화이다. 작게는 노부부가 서로 아끼며 아기자기하게 살아가는 전원생활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한 개인의 작고 지속적인 실천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수 있는지 사회운동 관점에서 읽히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90세 슈이치 할아버지, 87세 히데코 할머니 도합 177세인 이 부부가 매일 일상에 든든히 발딛고 서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들의 삶이 영글어 가는 원칙은 작은 것부터 조금씩 천천히 해보는 것.
뭐든 직접 손으로 만들어보고 정직하게 땀흘려 결과물을 얻는 것이다. 그것의 결과물은 마치 소왕국과도 같은 몇십종의 채소와 과일나무가 가득하며, 작은생명체에 대한 배려가 섬세하게 설계되어있는 몇백평규모의 정원이 되었다.
할수 있는 일에서부터 시작할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할수 없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슈이치는 시대를 앞서나간 그러나 때를 만나지못해 큰 업적을 이뤘다고는 볼수 없는 건축가였다. 그는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고지대의 신규건축단지를 짓는데 참여했다. 그가 구상한 그림은 자연의 원리를 순리대로 활용하고 인간과 자연과 잘어우러지는 주택 단지였지만 너무 시대를 앞선 그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고 한다.
뜻을 펼칠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자신에서부터 출발해 자신의 정원을 꾸미고 그러한 사람들이 더 늘어나서 녹지가 이뤄지길 바랬다. 몇백평규모로 조성된 작은 왕국은 그러한 작은 실천의 결과였다.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사회변화는 큰 규모에서 거창하게 벌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방식처럼 선한 목표를 마음에 품고 하나씩 천천히 할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문명의 전환은 개개인의 각성과 실천이 겸한 분자혁명과, 제도적인 변화로 이루어진다. 개개인의 실천과 변화가 어떻게 제도혁신으로 이어지는지, 인간의 제한적인 이성으로 그 동학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나무를 심는 사람>의 이야기나, 또 슈이치 할아버지의 삶에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개개인의 각성과 실천은 전염성이 있고 좀더 넓은 차원의 변화를 만들어낼수 있는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열매맺는 좋은 삶과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자연을 통해 배우는 것, 그리고 자신의 안에 있는 자연을 최대한 발휘해서 창조적인 삶을 사는 것, 그리고 주변사람들을 사랑하고 유익하게 하는데 나에게 주어진 재능과 시간을 쓰는 것 그것이 이 영화를 통해 찾을수 있는 열매맺는 삶의 비결이다.
열매맺는 삶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영화는 역설적으로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무리 열매맺는 삶을 살고 좋은 금슬을 누렸다고 할지라도 마지막에 가는 길은 빈손이고 혼자일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 참 덧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인도여행에서 느꼈던 삶의 모순. 인간의 경이로운 아름다움과 비참함이 공존함에 느껴지는 당혹감이 다시한번 느껴졌다. 인생은 분명 아름답고, 때마다 열리는 열매들은 보석과도 같다. 하지만, 인생은 절대 영원하지 않으며 오늘피었다 지는 꽃과 같이 유한하고 덧없음을 알수록 더욱 겸손해질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