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기록원 교육 후기(20181115)
서울기록원 직원교육의 강사는 일민미술관 조주현 학예실장님이셨다. 서울기록원은 2019년 2월 개관전시를 준비중이라고 하고, 기록물의 전시기획이라는 고민에서 이번 강의를 기획한듯 했다.
일민미술관은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전시로 이름이 높은 곳이라고 한다. 조주현 학예실장님은 작년에 공동체 아카이브 전시를 했는데 전문가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하셨다고 한다.
들으면서 점점 아키비스트와 큐레이터, 그리고 기획자는 서로의 경계가 많이 흐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전에는 아키비스트가 자료의 수집 보존에 역할을 많이했다면 이제는 큐레이터처럼 작가들의 작업의 조력자로서 의미있는 기록,기억들을 끄집어내고, 그러한 자료들을 재배열하여 대중들에게 중개하여 기록에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부여하는 역할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이는 예술계에 요구되는 변화와도 맞물린다. 이전에는 어떤 거장의 예술성, 아우라에 열광하여 그들의 예술을 향유했다면 지금의 대중들은 자기 내부의 창조성이나 예술을 표현하고 공유하는데 관심이 많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예술의 플랫폼도 과거와는 다르게 일반 대중들을 표현 욕구를 장려하고 담아낼수 있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들은 것이 2017년 일민미술관의 기획전시 DO IT 이었다. DO IT은 한스 오블리스트라는 큐레이터가 1993년에 기획한 전시플랫폼이라고 한다. 이런 전시를 기획하게 된 배경은 2017년 탄핵 정국에서 일반 대중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와 그들의 열망을 표현하는 것을 보며, 대중들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가는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실험해보고자 했다고 한다. DO IT 전시의 컨셉은 유명 작가들의 지시문을 받아서 관객들이 나름대로 해석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해보면서 예술가가 되어보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공동의 몸, 공동의 리듬>이라는 공동체 아카이브 전시였다. 시간에 흐름에 따른 다양한 공동체를 연구자들(민요연구가, 영화연출가, 사회학자 등) 그리고 아티스트들의 작업물, 서재등을 통해 보여주는 아카이브 전시였다고 한다. 관련된 이야기에서는 인터랙티브 전시, performative archive의 차원에서 관람객들이 참여를 통한 전시를 강조해서 이야기했다. performative archive란 관람객들이 작가의 아카이브들을 직접 만져보고 넘겨보고 재배열해보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전시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고유하고 유의미하도록 새롭게 창출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3층에 별도의 공간에서 관람객들의 생각 등을 기록할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것이 재현되면서 관람객들도 하나의 예술작품을 창조할수 있는 장치들도 performative archive의 일부로 의도되었다.
관람객들도 참여적인 전시를 통해 스스로가 예술가가 되어보는 경험, 그리고 자신의 재배열, 재구성 등의 행위가 예술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해보게된다. 고정된 의미로서의 의미전달이 아니라 관람객들이 각자의 재의미화를 통해서 본인들의 의미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러한 유동성, 불확정적인 개념이 기록학의 전제와 양립할수 있을까? 아마 익숙하진 않겠지만 그렇게 못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과거를 보존하는 것은 단지 옛것이라는 이유로 좋아하는 취미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지속적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를 주기 때문인 것이다. 과거 기록에서 현재적 의의를 발굴하는 것은 물론 각자의 기억에서 재의미화할수 있도록 하는 중개자로서 아키비스트의 역할을 재발견 할수 있을 것 같다. 과거 기록물에서도 나와 연관된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매개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것이 기록을 지속적으로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아카이브에서 다루는 기록의 개념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기존의 기록학에서 아카이브로서 보존의 가치가 있는 기록물은 공공기록, 공동체의 기록이다. 개인의 기록 역시 어떤 공공성을 띌때 보존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로컬 책방인 남해의 봄날에서인가 아버지의 개인사를 기록한 책을 본적 있다. 서문에 비슷한 고민이 엿보였다. 개인사를 다루다보면 너무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거나 가족들이나 관심가질만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즉, 이러한 사적인 이야기에 누가 관심을 가질 것이며, 또한 그것이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출판할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특수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누구의 아버지로라도 대체해서 읽힐수 있는 가능성 - 어떤 전형성,보편성 등이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개인의 기록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하고 다리를 놓고 공감을 얻는 것이 아키비스트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할 것이다.
또 텍스트 전시 한계에 대한 부분을 생각해보게 했다. 공동체 아카이브 전시는 관람객이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기록물에 대한 전시가 아무래도 텍스트 위주의 전시가 될수밖에 없을텐데.. 관람객들의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해 얼만큼 변신을 시도할수 있을까? 또한 이미지가 많이 소비되는 시대에 텍스트가 갖는 고유한 가치는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