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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Dec 31. 2018

로체스터 다이어리    

영국에서 이방인 겸 핵인싸로 사는 이야기 

영국과 잉글랜드는 다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런던은 잉글랜드의 수도이고, 잉글랜드(England)는 영국(United Kingdom)의 일부이다. 잉글랜드에는 런던 뿐 아니라 서리(Surrey), 켄트(Kent), 에섹스(Essex) 같은 다양한 주들이 있다. 로체스터(Rochester)는 그 중에 켄트에 속해있는 도시로 모두가 다 아는 런던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런던 동쪽 방향으로 빠른 기차로 25분, 느린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 


우리는 거기에 산다. 

그러면 우리는 왜 거기에 살까? 

앞으로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거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계속 서울에만 살았다. 친구들은 대학도 외국으로 가고 결혼도 외국에서 하고 그러는 동안 나는 별로 외국에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별로가 아니라 전혀 없었다. 잘 나가는 방송사에서 개편 없이 꾸준히 글 쓰는 방송작가로 신 나게 살고 있는데 뭐하러 외국에 가나. 외국은 그냥 일 년에 한 번 여행 가는 데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도 한국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십대가 되었고 아까 얘기한 로체스터에서 유학을 했다. 어쩌다보니 대학은 런던으로 갔고 어쩌다보니 직장생활도 영국에서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국의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직업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왔고, 간단한 10분 짜리 전화 인터뷰에 응했다. 몇 년 뒤 가족을 만나러 한국에 갔고 한국에 딱히 아는 사람이 없어 연락하게 된 그때 그 작가를 만났고 웁스! 결혼했다. 


아이는 영국에서 태어났다. 만들기도 영국에서 만들었고(?) 낳기도 영국에서 낳았다. 어떤 부부들은 조리원 생활을 위해 일부러 한국에 가서 낳기도 하지만 우리는 의료비가 무료인 영국에서 낳았다. 말이 무료이지 세금을 많이 내며 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딱히 무료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남편이 일을 빠지고 한국으로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아이는 영국에서 유치원을 다니고 있지만 유학생이라고 볼 수는 없을 거다. 이중 국적자이고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본인이 어느 국적을 유지하고 어느 국적을 버릴 것인지 정해야 한다. 



결혼은 한국에서 했다. 나는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영국에서 산 시간이 더 많은 사람'하고 결혼을 하면서도 내가 영국에 간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예전에 놀러가봤고, 앞으로 또 놀러갈 생각은 해봤지만 살 생각은 안 했다. 왜냐하면 나는 잘 나가는 방송사에서 개편 없이 꾸준히 글 쓰는 방송작가로 신 나게 살고 있었으니까. 


'이 결혼, 반댈세.' 흔하디 흔한 결혼반대 당첨이었다. 시어머니의 반대가 매우 심했고 시어머니가 반대하니까 환영받지 못하는 자리에 뭐하러? 라며 친정엄마도 반대했다. 결국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시어머니와 남편은 대화를 하지 않게 되었고 친정엄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살아온 딸이 시댁어른의 사랑도 못 받고 살게 된 것이 너무나 속상했지만 지가 한다는데 뭐. 


그래서 영국에 오게 됐다. 에이, 이런 이유 저런 이유 그런 이유 다 포장해보려 해도 사실은 이것 때문이다. 연애도 결혼도 약간의 신혼생활도 한국에서 했지만 나를 극도로 미워하는 사람이 같은 나라 어디엔가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불편한 일이다. 여러 번 남편 어머니의 마음을 돌려보려 했지만 그때마다 실패했고 남편과 나는 지쳐갔다. 아니 나는 매우 슬펐지만 솔직히 지치진 않았다. 방송작가들은 쉽게 지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자기 삶과 직장이 있는 영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했고 결국 그렇게 했다. 나의 직장과 삶은 한국에 있었지만 방송사의 배려로 꾸준히 글을 쓸 수 있었고 다행히 나는 여전히 햇수로 17년 차 현직 방송작가이다. 


처음엔 킹스턴(Kingston upon Thames)에서 살았다. 가는데마다 한국인이 있는 동네이다. 해외 생활이 처음인 나에게 적합한 곳이었고 어느 정도 생활을 익혔을 때, 남편 직장이 있는 이셔(Esher)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 임신과 출산을 했고 아이가 돌이 될 무렵에 집값과 교육, 교통, 런던과의 접근성, 환경 등을 따져 로체스터(Rochester)로 이사를 왔다. 남편이 청소년 시절을 보낸 곳이고 나에게는 아이엄마들의 세계에 첫발을 내민 곳이 되었다. 



로체스터는 그동안 분명 한국인이 살았거나 살고 있겠지만 지난 3년 동안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하였다. 옆 동네 스트루드(Strood)나 채텀(Chatham)에서는 한두 명 씩 보았지만 로체스터에서는 마주치지 못했다. 이곳에 10년, 20년 이상 살았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아도 나는 늘 그들이 처음 만난 한국인이었다. 만약 이 글을 보고 어 아닌데 나도 로체스터에 사는데, 하는 분이 계시다면 저에게 연락을...! 


잉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캔터베리 성당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된 성당인 로체스터 성당이 있고, 찰스 디킨스가 사랑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가 죽으면 로체스터 성당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그가 영국을 대표하는 여러 작가 중 하나이기 때문에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결정으로 현재 웨스터민스터 성당 안 시인의 자리에 묻혀있다. 로체스터 성당을 지날 때마다 그 생각이 난다. 유언을 남기면 뭐하나. 여왕 한 마디에 찍소리 못하고 원치 않는 곳에 묻혀 있는 것을. 


로체스터 성에서 로체스터 성당 내려다보기

 

로체스터 성(Rochester Castle)



매년 찰스 디킨스 축제와 굴뚝 청소 축제(Sweeps Festival)가 열리고 604년부터 시작된 명문사립학교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국 시간으로 따지면 삼국시대 때부터 현재까지 학생들을 가르쳐온 학교이다. 이처럼 역사와 전통이 심하게 살아 숨쉬는 곳으로 한국으로 치면 서울 인사동이나 안동 하회마을 같달까, 런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가 아무렇게나 진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무슨 수를 써서 진입을 했더라도 동네 사람들에 의해 외면받기 일쑤인데, 한 로컬 커피숍에는 '찰스 디킨스는 코스타(Costa)의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라는 문구가 대놓고 쓰여있기도 하다. 코스타 커피는 스타벅스와 같은 대형 커피숍 체인점인데 로체스터에 하나 있다. 나도 동네 사람들과 분위기를 같이 하며 웬만하면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이 운영하는 작은 커피숍에만 갔었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 로체스터의 모든 것이 마비될 정도로 많은 눈이 왔고 (영국 기준, 한국인들은 이 정도 눈이라면 출근에 퇴근까지 문제없었을 것이다)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지만 눈 때문에 모든 가게들이 문을 열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 예방주사를 맞히는 날이기도 했는데 간호사가 눈 때문에 출근을 못했다고 취소 전화가 왔고 학교들도 모두 휴교를 했다. 그런데 오로지 대형 체인점인 코스타만이 문을 열었던 것이다! 코스타의 대형 트럭은 눈이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로체스터 하이스트리트의 일방통행 길에 당당히 들어와서 물건을 납품하고 유유히 사라졌던 것이다! 그 이후로 개인적으로는 로체스터 코스타에 대한 적대심은 약간 누그러졌다. :)


이러저러한 볼거리로 런던 근교 당일치기 관광지로 유명한 로체스터에는 세 명의 한국인이 산다. 나, 남편, 아이. 우리가 그동안 여기서 어떻게 핵인싸가 되었는지는 다음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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