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다툼

J와 E

by Aeon Park

오늘은 영국에서 아이가 다니던 학교 엄마들 중에 가장 친한 두 명의 생일이다.

미국인J와 영국인E.

우리 셋은 아이를 같은 반에 보내고

셋 다 음주를 즐기며 외향적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빠르게 친해졌다.

그런데 그 중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이 생일이 같은 거다.


영국에 살 때는 제 시간에 축하를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국 시간으로 축하를 할 수 없으니 영국이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축하를 할 생각이다. 괜스레 곤한 잠을 깨우고 싶진 않으니까.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우리 아이들이 어린이집, 유치원, 1학년을 같은 학교에서 함께 보내고 같은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온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코로나가 생겼고 나는 영국을 떠나 한국에서 살기로 결정한다.


이후 크리스마스 때마다 한국으로 화가 잔뜩 난 엽서를 보내오는 J.

언제 돌아올 거냐. 배신자야. 나쁜 년아. 절친끼리 할 수 있는 별별 욕이 다 쓰여 있지만 기분 나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슬프게 들린다. 내가 영국에서 J처럼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데 그런 친구인 J가 가족들과 미국으로 돌아가버린다면 나도 상실감이 컸을 거다.


나는 나보다 두 살 어린 J를 달랬다.


"코로나 때문에 떠나긴 했지만 여기 삶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 네가 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랬잖아. 비데가 화장실마다 있는 나라를 왜 떠났냐고. 엉덩이도 따뜻하고 한국 진짜 좋다. 일단 넌 E랑 둘이 잘 놀고 있어봐. 내가 언젠가 다시 갈 때까지."


..라고 DM을 보내자 화들짝 놀란 답장이 왔다.


"내가 말 안했어? 너가 떠난 뒤로 우리 서로 안 만나. 대판 싸웠거든."


2020년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인종차별로 인해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항의시위가 5월 28일부터 6월 21일까지 계속되었고 전반적으로는 평화적인 시위였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적인 양상이 보고되기도 했다. 나는 당시 역이민 준비를 하느라 바빴고 6월 6일에 한국에 도착했다. J는 내가 떠난 후 BLM(Black Lives Matter) 평화 시위에 아이 둘을 데리고 참석했고 E가 그걸 말린 모양이었다. 그렇게 위험한 곳에 아이들을 데려가다가 제정신이냐며.


"E는 인종차별주의자야. 난 다시는 걔를 안 만날 거야."


여기서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친구들의 인종을 밝히자면 둘 다 흑인은 아니다. 처음엔 E가 그런 장소를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이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경찰 가족이기 때문이다. 나는 경찰 가족이기 때문에 화가 잔뜩 난 사람들이 세 명만 모여 있어도 위험한 곳이라고 판단한다. 남편이 그런 시위 장소에 배정되지 않기를 바랐을 거다. 그렇다고 이 마음이 나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어렸고 그 장소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고 해서 차별주의자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장소'란 나에게는 '화가 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E에게는 '화가 난 흑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비쳐진 것이다.


E는 흑인의 범죄율이 높은 건 통계가 말해주고 있으며 그건 다른 흑인친구들도 인정하는 바라며 언성을 높인 모양이다. 거기다가 E는 내가 흑인 친구가 얼마나 많은데 네가 그런 소리를 하냐며 논리에 맞지 않는 방어를 했나본데 유색인종친구가 많다고 해서 차별주의자가 아닌 건 아니니까.


여기까지만 들으면 E야말로 나쁜 년 소리를 들어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경찰 가족이라 생긴 버릇 중 하나는 양쪽 이야기를 다 직접 들어봐야 한다는 것. 난 아직 E에게 당시 상황을 듣지 못했다.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인데 뭘 묻겠는가. 일부러 묻지 않았고 먼저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릴 참이다.


여름에 있었던 그 다툼 이후

아침 등교 시간마다, 오후 하교 시간마다

너무나 어색하게 둘은 서로를 모른 체 한다고 들었다.

E의 남편은 이 동네에서 카페와 레스토랑을 운영하기 때문에 우리의 만남은 주로 그 카페와 식당이었는데 이제 J는 그곳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에 E는 J가 가장 좋아하는 스시와 초밥 등을 파는 해산물식당도 새로 열었는데 그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준 것도 J이다.


- 이 동네에 없는게 뭔지 알아? 해산물이야. 초밥 따위를 파는 식당을 열면 대박날 걸?


이 이야기를 J와 E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했는데 오랜 준비 끝에 드디어 올해. 그 식당은 열었지만 거기서 우리 셋이 함께 앉아 웃으며 와인을 마시자는 이야기는 마치 전생처럼 들린다.


오늘이 그녀들의 생일이라 생각이 나서 그런가 그 둘의 절교가 아쉽다.

올해 J가 보낼 크리스마스 엽서에는 '우리 화해했어. 이제 너만 돌아오면 돼.'라고 쓰여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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