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응하지 않았다는 말을 우리 아이는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동안 이 시리즈를 재밌게 보셨던 분이라면 그냥 not respond to는 아니라는 걸 눈치로 아실 터.
정답.
'응, 하지 않았다'로 이해했다.
예를 들면
엄마, 내가 ㅈ에게 이렇게 하자고 말했는데 걔가 응, 하지 않았어!
라고 말했을 때 난 ㅈ가 듣씹을 했다고 생각했었지만 아이는 ‘응하지 않았다’를 동의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말했던 것이었다. 놀랍게도 어떤 경우엔 아이가 이해하고 있는 대로 딱 맞아 떨어져서 상황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아이는 이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아는데 시간이 걸린 것이다.
다섯 살 생일 전에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로 한국에 와서 다른 아이들보다 더욱 한자어에 약한 우리 아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두 세트씩 있고 부모의 자매품 형제품으로 여러 친척들과 자주 만나 한국어 어휘력을 넓힐 기회가 많았던 다른 아이들에 비해 이 아이에게 있는 건 오로지 나, 엄마 뿐이라 매우 시니컬하고(냉소적) 직설적인 말투를 탑재하게 된 우리 아이. ‘應하다’의 ‘응’이 한자일 거라고는 당연히 생각 못 했겠지.
應하다
물음이나 요구, 필요에 맞추어 대답하거나 행동하다
우리 엄마는 한달에 한번씩 개척교회에서 반찬 봉사를 하시는데 전날 힘들게 만들어놓은 해파리냉채를 깜빡 잊고 가시는 바람에 나한테 교회로 갖다달라고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어린 아이와 둘이 집에 있었다. 지금 나보고 수십명이 먹을 무거운 해파리냉채를 들고, 걸어서 지하철역을 가고,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에서 내려서, 다시 교회까지 걸어가라는 거야? 그것도 어린이랑?
- (뻔뻔) 응
아니 그 교회 사람들은 해파리냉채 안 먹으면 어떻게 된대? 차도 엄마가 가져가서 지하철 타야 하는데 그건 좀 아니지 않아?
- (단호) 안 돼. 그거 오늘 꼭 내어야 해.
해파리냉채와 관련된 성경구절이 들어간 예배라도 있었던 걸까... 그래.. 친정에 얹혀사는 주제에 시키는 대로 하자..며 아이에게 나갈 거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아이가 말썽이다.
- 싫어어어. 나 안 나가. 집에 있고 싶은데 할머니는 왜 우리보고 그걸 갖다 달래? 할머니가 와서 가져가라고 해애애
예배 끝나고 식사 시간에 맞추어서 해파리를 배달해야했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급했다. 착한 거짓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 할머니가 어제 이거 열심히 만드셨는데 오늘 깜빡하고 안 가져가서 지금 할머니가 막 울고 계셔(거짓말). 얼른 가지고 오래.. 그러니까 우리가 갖다주자. 알았지?
- 근데 엄마. 해파리를 못 먹는 사람이 울어야지, 왜 할머니가 울어?
참 너다운 생각이다. 그렇지.. 해파리냉채를 못 먹게 된 사람이 울어야지, 왜 할머니가 우실까.
3학년인 지금은 해파리냉채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정성스레 만들었지만 깜빡하고 갖고 오지 못해서 딸과 어린 손녀에게 대중교통으로 와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늙은이의 현재 심정을 눈물로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것을 혹시 알까? 지금 똑같은 부탁을 할머니가 하신다면 내 아이는 기쁜 마음으로 응!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