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질문에 훨씬 더 관대한 나라에서 살다가 한국에 온 우리집 어린이.
- 엄마, 선생님이 질문을 못 하게 해.
한국에서 1학년이 되고 나서 가장 많이 한 말이다.
해외에서 학교 다니다 온 게 너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이 무슨 주입식 80년대도 아니고 진심?
- 응. 선생님이 나보고 그만 좀 질문하래.
아이고 두야 아이고 심이야
학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엄마, 내가 이론 시간에 음악 책에 있는 '개념'이 뭐냐고 피아노 선생님한테 물어봤는데, 선생님이 '여기는 국어 학원이 아니예요'라고 말했어.
아이고 두야 아이고 심이야
3학년이 된 지금은 어떨까?
선생님들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 어린이가 되었다. 다만 엄마인 나에게는 아직도 꾸준히 질문을 하는 걸 다행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가끔은 나도 질문의 홍수에 빠져 정말 너무너무 숨이 막힐 때마다 제발 선생님한테도 질문을 하면 안 될까, 라고 사정을 해보지만 선생님은 어차피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하라고만 하기 때문에 질문을 하지 않는단다.
최근에 아이가 나에게 했던 질문들을 정리해봤다.
- 엄마, 휠체어 탄 사람도 아이돌을 할 수 있지?
- 엄마, 휠체어 탄 사람은 왜 팔힘이 세?
- 엄마, 휠체어 탄 사람은 아파트에 불이 나면 어떻게 탈출을 해?
- 엄마, 영어로 쓴 책은 '옮긴이'가 있잖아. 그러면 그림은 '옮긴이'가 왜 없어?
- 엄마, 미용실에서 내 머리카락이 상했다고 했어. 머리카락이 어떻게 썩어?
- 딸아, 네가 넷플릭스에서 재밌게 시청한 <The Healing Powers of Dude>에 나오는 휠체어 탄 배우있지? Sophie Kim. 걔도 실제로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고 현재 배우를 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아이돌도 당연히 할 수 있지.
- 딸아, 그들이 팔힘이 세다고 생각했나보구나. 아마 이동할 때 팔이 다리를 대신하는 일이 많아서 그래보였나보구나. 엄마도 잘 모르지만 내 생각엔 굳이 팔힘이 셀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우리가 도와주면 되잖아. 요즘엔 전동휠체어도 있어서 버튼을 누르면 앞으로 그냥 갈 걸?(추가질문공격 들어옴 Q. 그럼 충전을 할 수 있어? 어떻게?)
- 딸아, 휠체어를 탄 사람은 불이 나면 우리가 도와줘야지. 그들은 어떻게 탈출을 하지, 고민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가서 도와주면 돼.
- 딸아, 언어는 나라마다 달라서 번역을 해야할 때가 있지만 그림은 그냥 보아도 어떤 그림인지 아니까 옮긴이가 필요없다고 생각해. 그런데 네 말을 들어보니 그림도 어쩌면 나라별로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겠네? 네가 한번 그림을 옮겨보는 건 어때? 세계최초로 그림옮긴이가 되는 거야! (실제로 한국어린이그림책에서 밥솥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려놓지만 그게 뭔지 단번에 알아낼 수 있는 외국인 어린이는 많지 않을 듯)
- 딸아, 미용사가 머리카락이 상했다고 말해서 기분이 나빴구나. (아! 귀여워!) 머리카락이 상했다는 말은 음식처럼 상했다는 게 아니라 트리트먼트가 필요하다는 말과 같아. 영어로 damaged hair라고 하잖아? 여기 끝에 보면 막 갈라지고 그렇지? 그걸 한국에서는 상했다고 해. 절대로 네 머리카락이 곰팡이가 난 것처럼 썩었다는 뜻이 아니야. 오해하지 마.
나는 아이의 질문에 언제나 진심이다.
아이가 집중력을 갖고 들어줄 때까지는 진심을 다해 대답한다. 대부분 내 답이 길어져서 아이가 안 듣기 시작하곤 하지만 일단 질문을 받으면 진심을 다해 답한다.
학교선생님들이 한 반에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의 질문에 진심이 아닐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 더 귀기울여주시면 어떨까.. 조금 서운하다. 질문을 잘한다고 칭찬받던 아이가 질문을 한다고 혼나는 아이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니 서운하다.
한국어가 아예 안 되는 상태인 걸 처음부터 직접 봐온 피아노 학원 선생님도 '개념' 설명을 잘 못하겠다고 판단이 되었다면 온라인 사전이라도 검색해서 '개념이란 concept, idea을 말하는 거야.' 정도로는 답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 키우는 친구들에게 이 일을 상담하니 선생님들한테 말도 꺼내지 말란다. 아이한테 피해가 가기 쉬우니까 이래라 저래라 입도 벙긋 하지 말란다.
하아. 그래서 나는 오늘도 홀로 최선을 다해 대답을 준비한다.
딸아, 그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