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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eon Nov 17. 2023

MBC캠페인, 우리말나들이입니다



 우리말나들이의 원고를 쓰기 시작한 지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97년 12월 첫방송 때부터 내가 쓴 건 아니고 TV는 2003년 가을부터 2012년 여름까지, 라디오는 2004년 봄부터 현재까지 맡아서 쓰고 있다. 말이 이십년이지, 기저귀 차던 아이가 대학 입학하는 것까지 보는 그런 세월이 아닌가. 분명 나도 20년 됐다는 식당에 가면 감탄하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엔 ‘뭐, 나랑 비슷하네’ 너스레를 떨어도 밉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낸 것이다.


 처음 방송 일을 시작했을 때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이었다. 수업에 여유가 있었고 꿈이 방송작가여서 가능하다면 일을 빨리 시작하고 싶었다. 시청자에게 주는 상품용 백화점 상품권을 주급으로 받던 자료조사원, 메인작가/서브작가 밑에서 배우면서 일하는 막내작가 등을 거쳐 짧은 대본이지만 혼자서 우리말 원고를 쓰게 되었을 때 나는 대학교 4학년 2학기였다. 평소에 국어사전을 수필 읽듯이 읽는 취미가 있긴 했어도 국문학과도 아니고 여러 가지 한국어 문법을 잘 알지 못했기에 무조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 정한 그대로, ‘이 말만 맞고, 저 말은 틀립니다! 왜냐하면 사전이 그렇다고 하니까!’라는 투의 글을 썼다.


이듬해 졸업을 하고 어느 정도 일을 하니 라디오국에서 같은 이름의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그렇게 ‘라디오 캠페인 우리말나들이’의 원고도 맡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니 한 출판사에서 방송내용을 책으로 엮자는 제안이 있어 책을 내기도 하고, 또 다른 출판사의 제안으로 순우리말을 섞어서 쓴 감성에세이를 내기도 했다. 이렇게 꾸준히 우리말 원고를 쓴 덕분에 스무 해의 지식이랄까 요령이랄까 기술이랄까.. 외래어로 말하자면 노하우가 생겼는데 이제는 사전에 오류가 보이면 수정을 요청하기도 하고, 사전에 있는 표제어이더라도 차별과 편견을 담고 있다면 사용하지 말자고 방송 원고를 통해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20년 차 우리말 작가가 좋아하는 우리말은 무엇일까. 먼저 ‘너나들이’가 있다. 우리말나들이와 라임도 맞아 좋아하는 말인데 서로 너니 나니 하고 부르며 허물없이 말을 건넴. 또는 그런 사이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2007년에 우리말나들이 1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특집 방송이 있었는데 당시 이 프로그램을 맡은 여러 작가 중 하나였던 나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너나들이>가 이 특집 프로그램의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동사 ‘여겨보다’도 좋아한다. 어느 날, 누리집(홈페이지)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회의를 엿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 회의에서는 누리집을 구성하는 꼭지(코너)의 이름을 정하고 있었는데 핫이슈, 포커스, 클로즈업 등의 외래어 중에 고르려는 찰나였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답게 지나가는 말로 ‘그걸 우리말로 지으면 어때요, 예를 들면 여겨보기?’라고 슬며시 의견을 냈는데 감사히도 괜찮다고 해주셔서 그 꼭지 이름이 ‘여겨보기’가 된 적이 있었다. 이럴 땐 괜스레 뿌듯하다.


 자기 분야에서 그 일을 오래도록 한 사람을 두고 우리는 전문가, 시쳇말로는 고인물이라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등재되어있지 않아도 우리말샘에는 있는 말, ‘고인물’은 오랫동안 활동하여 그 분야에 통달한 사람을 이른다. 어쩌다 고인물이 되어보니 표준국어대사전과 더불어 이렇게 우리말샘도 여겨보고, 이건 틀리고 사전에 있는 저것만 맞는다는 투의 원고는 줄어들었다. 지금은 사전에 있지만 잊힌 우리말이나 알아두면 유용할 순우리말을 여겨보거나 세대 간의 대화 단절을 일으키는 어려운 말들을 알기 쉽게 풀어주는 내용을 다루는 원고가 늘었다. ‘만날 자장면만 먹냐?’만 맞았는데 내가 보낸 시간 속에서 이제는 ‘맨날 짜장면만 먹냐?’도 맞는다는 걸 겪었기 때문이다.


 나는 라디오 디제이가 아니라서 20년 차에게 주는 골든마우스는 못 받아도 이 자리를 빌려서 우리말나들이를 봐주시고 들어주시는 시/청취자 여러분과,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고마운 사람이 한 명 더 있는데, ‘닭이’를 [달기]라고 발음하는 초등학생이 몇이나 있을까. 엄마가 구사하는 우리말이 친구들과 달라도 내 말을 믿고 그대로 발음해주는 아이도 참 고맙다.



*월간 에세이 2023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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